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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마을을 가로지르는 실개천과 골목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C010202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수정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졌으며, 골목길 옆에는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다. 봉산마을전단산 자락에서 시작되는 이 도랑과 골목길은 봉산마을과 용정마을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봉산리 45번지와 43번지, 15번지를 가로지른다.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지 못한 이 도랑과 골목길은 마을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며 마을의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옛날 이 길이 시작되는 지점의 언덕에는 작은 간이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글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고자 건립된 곳으로, 정부에서 건립한 제도권 학교가 아니었던 이곳은 그리 오래 운영되지 못해서 마을 내에서 간이학교에 대한 기억을 지닌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간이학교는 이름을 갖지는 못하였으나 가을운동회를 개최하여 주민들이 많이 참여하기도 하면서 학교로서 자리 잡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신방공립보통학교[현 신방초등학교]가 1923년 개교하면서 대부분의 학생이 전학하여 간이학교는 이내 폐교되었다.

이 후 한동안 이 건물은 동사(洞舍)로 이용되다가 한국전쟁 이후 철거되었다.

도랑은 골목길을 따라 흘러 내려 지금의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의 노인정인 송산노인정 자리에 저수지를 형성하였다.

이 저수지는 봉산리 15번지송정리 153번지 일대에 조성된 것으로 인근 지역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작은 연못이었다. 저수지 끝자락에는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물레방앗간은 1920년대 중반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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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노인정

물레방앗간은 봉산마을뿐만 아니라 자여마을용잠리 지역의 주민들까지도 이용하였다. 물레방아는 어른들에게는 곡식을 찧는 농기구였으며, 아이들에게는 재미난 놀이기구이자 모임 장소로 이용되었다. 황봉광 옹은 이곳을 “그 당시 아이들은 물레방앗간에 자주 모여 놀았어. 특별히 방아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고, 놀이터가 없던 시절 이곳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모일 수 있는 좋은 곳이거든.”이라 기억하고 있다. 여름이면 물레방앗간뿐만 아니라 저수지에서도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며 놀았다. 그러나 도랑의 물이 부족해지면서 저수지와 물레방아는 이내 사라지게 된다.

이를 대신해 마을에서는 돌방아라 부르던 연자방아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해방 직후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게 된다.

본시 봉산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다수 거주하여 전기가 일찍 들어왔으나 일반 가정집에는 전기가 설치되지 못하였는데, 정미소를 운영하고자 한 마을 주민이 이 전선을 연결하여 마을에 전기를 다시 설치한 것이다. 이 후 전기가 마을에 다시 들어오면서 돌방아는 전기정미소로 바뀌어졌다. 물레방앗간과 연자방앗간 그리고 전기정미소로 그 모습을 바꾸었던 도랑가의 이 자리에는 현재 오래된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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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

도랑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길은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을 경계 지을 뿐만 아니라 자여장의 난전이 되기도 하였다. 1일과 6일이 되면 각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어 하천 가장자리를 따라 전을 펼쳐 시장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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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줄당기기 판, (구)자여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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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줄당기기 판, (구)자여장터

정월이 되면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용정마을·단계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줄당기기를 하였는데, 그 놀이판이 벌어진 곳 또한 이 도랑가의 골목길이었다.

또 줄당기기에 필요한 큰줄도 이 도랑가에서 만들었다. 큰줄은 수줄과 암줄을 합쳐 100m 가량이 되기 때문에 실내에서 만들 수 없었다. 이 줄을 펼쳐놓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도 마을에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도랑을 따라 형성된 이 길은 마을에서 가장 큰 공터였으며, 행사를 진행하기에 충분한 마당이었다.

이와 같이 도랑과 골목길은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대소사를 그대로 겪으면서 지금까지 흘러 왔다. 오늘날 도랑은 수도공사 등으로 인하여 물의 양이 많이 줄어 작은 실개천이 되었고, 그 옆의 골목길에서는 더 이상 시장이 형성되지도 않고 대동놀이의 마당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도랑과 골목길은 여전히 봉산마을 가장자리를 흐르면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용히 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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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봉광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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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학 옹

[정보제공자]

황봉광(남, 1919년생, 봉산마을 거주)

김문학(남, 1925년생, 봉산마을 거주, 송산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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