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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동제와 남겨진 석제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C030101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수정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봉산마을의 동제는 인근 송정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광복되기 10여 년 전에 중단된 것으로 알려진 이 제의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에서 보름으로 넘어가는 자시(子時, 밤 11시에서 새벽 1시)에 이루어졌다. 이 동제는 지금의 자여마을 동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이루어졌다.

동제를 지내기 위해서 마을에서는 정월 초가 되면 가장 먼저 제의를 주관할 제관 한 사람을 생기복덕(生氣福德)과 인품을 고려하여 뽑았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제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삼가고 가급적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또한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부부간의 생활도 삼가야 한다. 이 금기 생활은 제관으로 선정된 날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제관이 선정될 때까지 계속된다. 즉 제관은 1년 정성을 드려 제의를 모시는 것이다.

제관이 선정되면 마을 사람들은 왼새끼로 꼰 금줄을 제관의 집과 제당 주변에 둘러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한다. 그리고 제의 전날 제관 부부는 함께 자여장에 나가 제수를 구입한다. 그 당시 봉산마을에는 자여장이 끝자리가 1일과 6일날에 열렸다.

제수를 구입할 때 제관은 삿갓을 쓰고 나가 지나가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가급적 말을 삼가고 물건을 살 때에는 절대 흥정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삿갓을 쓰고 찾아온 손님이 그 해 제관임을 알고 물건을 비싸게 판매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인들은 제수에 이용될 물건은 파는 것은 가게에도 좋은 일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제의에 주로 사용되는 음식은 채소 종류였다. 제의는 3차례에 나누어 이루어지는데, 산신제에서는 절대 육고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매년 제기(祭器)를 새로 구입하여 사용하며 한 번 사용한 것은 절대 다시 사용하지 않았다.

제의는 산신제-당제-당산제 순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산신제는 마을 뒤 산 중턱에 있는 굿터에서 이루어졌다.

이 굿터는 예부터 마을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간단히 준비해 간 나물과 해산물을 주로 이용하여 준비하고, 밥은 그 자리에서 직접 지은 것을 이용한다. 제의에는 제관 부부만이 참여한다.

산신제가 끝나면 마을 산 중턱에 마련된 제단으로 발걸음을 옮겨 제의를 행한다. 제단은 돌로 만들어져 당집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제단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마을의 당제를 지내는 장소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을 뒤 산에 있던 당산나무에서 마지막 당산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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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단

제의의 과정은 모두 유교식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며, 참석자는 제관 부부가 전부이나 제의에 예를 표하는 것은 제관 혼자이며, 부인은 제의를 준비하는 과정까지만 참여할 뿐 직접적인 제의에서는 빠진다. 제의가 끝나면 다음날 아침 제관 집에 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하게 된다. 음복을 마지막으로 동제는 끝이 났다.

봉산마을 동제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해방되기 10여 년 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이렇게 중단된 제의는 1980년대 들어서 다시 시작됐는데, 이것이 오늘날 연행되는 자여마을의 당산제이다.

전통사회에서 지내던 동제는 주민들의 기억과 현재 남아 있는 석제단과 굿터라는 명칭으로만 남아 있다. 석제단은 현재도 봉산마을 뒷산 정상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주위에는 풀이 무성하게 덮여 있으나 그 형태만은 변함이 없다. 석제단은 정확하게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형태는 3면을 넓은 판석을 이용하여 세웠고, 윗면에도 판석을 얹어 방과 같이 조성하였다. 상석 밑에 형성되어 있는 공간의 크기는 1.65×1m이며, 장방형이다. 제단 주위에는 현재 민묘가 앞과 옆 그리고 뒤를 둘러싸고 있다.

[정보제공자]

황봉광(남, 1919년생, 봉산마을 거주)

김문학(남, 1925년생, 봉산마을 거주, 송산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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