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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나루에 오고가는 배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D010301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모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해광

예나 지금이나 1,300리 낙동강은 쉼 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굽이굽이 수만 수천 년을 그렇게 흐르는 동안 낙동강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물을 주었으나 사람들은 낙동강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의 모든 자연환경이 오직 사람만을 위한 것인 양 편리 위주로 무분별하게 파헤치고 건설하여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을 지경인 오늘날이다. 낙동강 역시 사람의 필요에 의해 파헤쳐지고 오염된 지 오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낙동강은 강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물만이 아닌 교통수단도 제공했던 고마운 강이었다. 그 시절에는 강을 건너다닐 수 있는 변변한 다리가 없어 배를 타고 건너거나 오르내리며 교류를 했다. 대부분의 배는 노를 젓는 목선이거나 바람을 이용한 돛배였지만, 멀리 부산 하단이나 구포 등지에서 물을 거슬러 상류 지방인 밀양 하남읍 수산이나 창녕 남지읍 나루, 더 멀리는 경북 안동까지 해산물을 싣고 팔러 다니는 배들은 꽤 크고 동력 엔진이 달린 통통배였다.

밀양 하남읍 수산 지역과 강을 건너 마주하고 있는 창원시 대산면 일대의 일동리 수성나루와 모산리 모산나루를 오가는 배들은 기껏 20~30여 명 정도가 타면 알맞은 쪽배들뿐이었다.

간혹 돛배들도 있었지만 바람이 없어 잠잠할 때면 삿대나 노를 저어야 했기에 귀한 동력엔진의 통통배는 배의 크기나 속도에서 쪽배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고 빨라서 강변 사람들에게는 구경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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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단배 풍경

둔탁한 엔진 소리를 내며 거센 물살을 가르는 큰 배의 속도 때문에 꽤 큰 파문이 일어서 강 언덕의 모래가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은 아이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강변 둑 위에서 어울려 놀던 아이들은 아래쪽인 삼랑진 방면에서 통통배의 엔진 소리가 들리면 너나없이 떼를 지어 달음박질을 해 강가로 나가서는 통통배를 구경하기도 했다.

강가에서 분주하게 오르내리는 배를 구경하기는 예사였지만 정작 배를 타볼 기회는 드물었던 아이들에게 닷새마다 서는 밀양 하남읍 수산장날은 부모님을 따라 배도 타보고 장날 구경도 하는 기회여서 모처럼 신나는 날이었다. 그래서 장날이면 장에 따라가려는 아이들과 떼어놓고 가려는 부모 사이의 실랑이가 이 집 저 집에서 벌어지곤 하였다.

그랬던 낙동강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수산대교가 건설되고부터 육상교통이 발달해 강물 위로 오르내리던 배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1980년대에는 고기잡이를 하던 배들마저 사라져 그야말로 적막감이 도는 낙동강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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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대교와 낙동강 연안

강을 건너 오가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이 되어 주었던 나루터 주막집도 사라져 버렸고, 마음씨 좋았던 뱃사공도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흐르는 강물만큼이나 많은 세월이 흘러간 오늘날, 낙동강에 떠다녔던 수많은 배들은 이제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정보제공자]

문학봉(남, 1931년생, 북모산마을 거주, 북모산마을 노인회장)

문학암(남, 1935년생, 북모산마을 거주, 전 대산면 부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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