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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꾸리로 조개 잡던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D010302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모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해광

도시의 골목길을 누비며 이른 아침부터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하던 소리가 사라진 지도 오래 되었다. 창원 지역에서는 푸르스름한 껍질의 강조개를 ‘재첩’이라 부르는데, 1976년 10월 경상북도 안동댐이 건설되고 대구 지방의 염색공단이 입주하기 전까지 낙동강에는 재첩이 그야말로 지천이었다. 특히 보리가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5월이면 강가 물 얕은 모래사장에는 재첩이 마치 냇가의 자갈처럼 지천으로 깔려 재첩을 잡는 사람들로 강이 북적였다. 대부분 손으로 주워 모아 고무신에 담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도로 강물에 던져 되돌려 보냈지만, 재첩을 팔아 용돈벌이를 할 요랑이거나 재첩국을 끓여 먹을 사람들은 철사로 촘촘하게 깔꾸리를 만들어 강바닥 모래 위를 끌면서 잡았다. 당시에는 워낙 재첩이 많았기에 한두 시간 정도만 깔꾸리로 잡으면 물동이에 한 가득 잡을 수 있어 물지게로 져다 나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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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농수로에서 물고기를 잡는 풍경

하도 흔해서 보통 사람들은 그다지 재첩을 잡으려 하지 않았지만, 재첩을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그들이 깔꾸리로 채취한 재첩 껍데기가 집의 장독간이나 삽작에 수북이 쌓여 있곤 했다. 또한 농사일이 뜸한 농한기에는 삼삼오오 모여 재첩을 잡아 삶아서 재첩살을 초장에 비벼 숟가락으로 퍼 먹으며 술안주나 밥반찬으로 먹기도 했고, 시원한 국물을 들이키기도 했다. 아이들의 입맛에는 재첩이 맞지 않아 잘 먹지 않았으나 소꿉놀이할 때에는 요긴한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마당 한켠에는 재첩껍질이 예사로 흩어져 뒹굴고 있었고, 손재주가 꼼꼼한 사람들은 꽃밭 가에 수를 놓듯 가지런히 엎어놓아 마치 구성 미술 작품을 연상케도 했다.

이렇듯 낙동강 가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흔했던 재첩도 안동댐의 방수량 조절과 염색공장의 폐수가 유입되면서부터 일시에 사라져 버렸고, 낙동강은 한때 페놀유출사고로 식수원은커녕 농업용수로도 부적합한 물이 되고 말았다. 그랬던 낙동강이 이제는 환경 의식의 변화로 점차 수질 개선사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다시금 1960~1970년대처럼 재첩이 되살아날 수 있을지는 자못 궁금하다.

[정보제공자]

문학봉(남, 1931년생, 북모산마을 거주, 북모산마을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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