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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년의 역사 - 입향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E010103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외감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용

외감마을에 사람이 살았다는 가장 오래된 흔적은 마을 앞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3기와 가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군 2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 마을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누구이고, 언제 어디서 왔는지 하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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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고인돌(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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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고인돌

시골 마을로서 비교적 큰 마을에 속하는 외감은 처음 마을을 일군 뒤에 여러 성씨들이 차례로 입향하여 큰 마을로 발전하였으리라 믿어진다. 외감마을에는 회산감씨, 진주강씨, 김령김씨, 김해김씨, 경주이씨, 밀양박씨, 달성서씨, 순안안씨, 원주원씨, 성산이씨, 전의이씨, 전주이씨, 함안조씨, 창원황씨 등의 여러 성씨들이 이웃이 되어 100여 호를 이루었다. 한때 경주이씨가 50여 호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20여 호만 남아 있다.

구전에 의하면 외감마을에 최초로 입향한 성씨가 옥산전씨로 알려져 있다. 입향조는 시조 전영령(全永齡)의 15세손인 전세길(全世吉)로, 세거지인 합천에서 입향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입향조의 11세 후손들이 외감마을과 타지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다.

다음 입향 성씨는 원주원씨라고 한다. 시조 원익겸(元益謙)의 16세손인 원원조(元源祖)[1624~1708년]가 입향조로, 김해부 웅천현감으로 봉직 후 벼슬에서 물러나서 귀향하지 않고 길지로 여긴 외감마을에 정착한 것이란 한다. 현재 입향조의 10세 후손들이 외감마을과 타지에 10여 가구를 이루고 살고 있다. 입향조의 묘소는 북면 화천리 독골에 있으며, 양력 11월 3번째 일요일 묘사를 올린다.

한때 외감마을에서 집성을 이룬 경주이씨의 입향조는 이거명(李居明)의 26세손인 이잠천(李潛天)으로, 1600년대 전후하여 경기도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지금 12세 후손들이 일가를 이루어 외감마을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음력 10월에 일가들이 모여 외감리 독뫼(똥메)에 있는 입향조 묘에서 묘사를 올린다.

진주강씨의 입향조는 시조 강이식(姜以式)의 15세손인 강태발(姜太發)[1654~1746]이다. 강태발은 경상남도 거창의 세거지에서 입향한 것으로 후손들은 여기고 있다. 입향조의 11세손 12여 가구가 현재 외감마을과 타지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다. 묘소는 경상남도 마산시 가포동과 대전 등에 있다.

다수의 일가를 이루고 있는 전주이씨의 입향조는 파시조 효령대군의 17세손인 이창의(李昌儀)이다. 순조 대 인물로 본래 경상남도 마산시 월영동 일원에 선족이 살았다.

가세가 기울자 처가(진주강씨)에 의탁하고자 이곳 외감마을에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입향조의 5~6세 후손들이 20여 가구를 이루어 외감마을과 타지에 산다. 음력 10월에 북면 중방리 양목산에서 입향조께 묘사를 올린다.

외감마을에서는 옥산전씨의 입향 시기가 가장 빠른 것으로 구전되고 있으나 원주원씨나 경주이씨의 입향 시기도 그리 늦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타의 성씨들도 차례로 입향하여 마을의 구성원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4.09 인명 오탈자 수정 전이령 -> 전영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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