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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서려 있는 들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E020104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외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용

배부르고 등 따시면 얼마나 좋으랴! 산촌마을 외감 사람들은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려고 그리 넉넉하지 않는 논밭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살았다. 보매기·세창껄·들판·돌안·쌔바뜽·방고·새바골·숲등·조상껄 등은 앞들에 있는 논과 밭이고, 대밭보·장대등·장대못밑·구메·산지뙤 등은 뒤들에 있는 논과 밭이며, 재짝골·논골·종재울·서짓골 등은 저 멀리 있는 산답과 밭이다.

여기서 거둔 곡식으로, 대처에 나간 아들 딸 학비를 대고, 혼수를 장만하여 장가보내고 시집보냈다.

5일장에 내다판 몇 도배기 곡식은 아이들의 과자가 되고 저녁상에 갈치 반찬으로 오르기도 한다. 이 곡식으로 시절마다 조상님의 상에 올리고 이웃집과 어려움도 함께 나눈다. 풍년이 들어 여유가 생긴 곡식을 내다 팔고 송아지 키워 팔아 한 뙈기 한 뙈기로 이룬 땅은 참으로 귀한 것이었으며, 농사꾼의 분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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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들

산자락에 일군 농토인지라 논두렁이 꼬불꼬불하고 계단식이며 천수답이다. 앞들 논은 물대기가 수월하며 땅심이 좋아 문전옥답이나 뒷들에는 이마만 따뜻해도 물길이 끊어지는 천수답이 많다. 주로 천수답이다 보니 가뭄이 들면 물꼬 다툼이 많았지만 한줄기 단비에 이내 물꼬는 점잖아지고 화목해진다.

모내기는 물이 좋은 앞들부터 시작되며 장대못과 서짓골못에 물이 열리면 뒷들 논 모내기도 끝난다.

온 동네가 품앗이로 20여 일 동안 그 넓은 논에 모를 심었다. 모심기는 어머니나 누나 등 여인네의 몫이고, 남자들은 논을 갈고 짐을 나르는 일을 맡아 한다. 가끔씩 어머니를 따라 모를 심어 보면 어머니의 고단함이 온몸에 배어들었다. 품앗이 모내기에는 “모야 모야 노랑 모야, 언제 커서 열매 열래” 하면 다른 한쪽에서 운을 받아 “모야 모야 노랑 모야! 이달 크고 저달 커서 구시월에 열매 열지” 하는 농요가 이어지기 마련인데, 고단함을 들어내는 모습이 힘겨웠다.

온 들녘을 메운 모는 장정들의 논매기로 실하게 자란다. 논메기를 어렵게 하는 쇠파리의 극성 때문에 논매는 장정들은 으레 등에다 나무들을 꺾어 두르고 김을 맨다. 그 모습은 마치 군인들의 위장 모습과 같았다. 여름 내내 자란 벼가 여물 때면 참새 좇는 허수아비가 들녘을 지킨다. 그 때 벼를 쪼아 먹는 참새들이 왜 그리 많았는지 모르겠다. 허수아비 대신 깡통종을 만들어 흔들어 대기도 했다.

이맘때 농사일에서 다소 여유가 생긴 몇몇 젊은이들은 힘을 모아 웅덩이의 미꾸라지를 잡았다. 이웃집 아낙들도 이때라 싶어 한몫 거들고, 그 손맛에서 우러나온 추어탕은 마을의 작은 잔칫상이 되었다. 추어탕에 막걸리 한 사발로 힘든 농사일을 잊고 웃음꽃이 피는 정담에 가을밤이 깊었다.

땡볕과 한철 지낸 들녘에 농부의 부지런함이 황금빛으로 결실을 맺으면 풍년이든 아니든 감사한 마음으로 곡식을 거둔다. 추수가 끝난 빈 들녘은 빈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농군의 부지런한 모습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고, 이듬해 봄을 기다리는 농심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기를 어언 400여 년을 넘어가고 있는 마을이 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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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지봉에서 본 북면골

[정보제공자]

조영제(남, 1954년생, 외감마을 거주, 외감마을 이장)

이성대(남, 1953년생, 외감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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