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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우주목 당산나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E020202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외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용

여느 시골마을과 같이 외감마을에도 당목(당산나무)이 마을 앞 세창걸에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장정 5~6명의 팔아름이 되는 당산나무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정확치 않지만 마을의 역사와 같이 하리라 여기고 있다. 측정된 자료에 의하면 270년이 넘는다고 하며, 현재는 창원시의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지라 오가는 마을 사람을 말없이 반겨주며 그 큰 키로 온 동네를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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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감리 당목(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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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감리 당목(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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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감리 당목(겨울)

당산나무는 외감마을의 우주목(신목)이다.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먼저 당산나무에 고하여 허물이 없기를 빌었고, 궂은일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마음을 당산나무 앞에서 챙겼다. 섣달그믐이면 집집마다 당산나무에 밤새 등을 밝혀 한 해 동안 무탈함에 머리 숙였으며, 새해의 평온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정성스런 마음이 두 손에 모아져 당산나무를 향했다. 봄이 되어서는 당산나무에 돋는 잎을 보고 마을 어른들은 한해에 비가 많고 적음을 점쳤고 풍년을 염원했다.

정월 대보름의 동제는 당산나무에서 비롯됐으며, 동제 후 큰깍단과 작은깍단 힘을 다 모우는 줄다리기도 당산나무 아래에서 행해졌다.

장정들의 한 해 품을 결정하고 마을의 이 일 저 일을 매듭지어 모름으로 삼는 곳도 당산나무 아래다. 팔월 보름이면 당산나무에 그네가 매달리며, 가장 높이 난 그네는 마을 장원으로 뽑혔고, 수줍은 처녀들의 밤그네가 보름달을 차고 오르기도 했다. 백약이 무약인 아픔도 신목인 당산나무에 의탁하여 편안함을 얻어 갔다. 지금도 당산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받아주며 애환을 달래 준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수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군에 가는 아들 손자의 손을 잡고 이 당산나무에 무사함을 빌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아들 손자를 보냈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눈물이 배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새악씨(새신부)의 가마도 이 당산나무 아래를 지나 물설고 낯선 곳으로 갔으며, 마을의 새신랑도 이곳을 지나 새악씨 집으로 품위 있게 장가들었다. 객지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도 그 옛날 이 당산나무 아래에서 마음을 다지고 떠났을 것이다. 5일장 간 어머니가 사올 과자봉지를 한참이나 기다렸던 개구쟁이의 모습도 여기에 있었다. 귀한 손이 올 날이면 먼저 당산나무 아래서 서성이다 손을 맞이했고, 또 아쉬운 정으로 배웅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당산나무는 옛일들을 속으로 삭이며 길손의 눈그림만 되고 있다.

[정보제공자]

이성대(남, 1953년생, 외감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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