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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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賢里 堂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삼현리 조잠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민정희 |
의례 장소 | 제당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삼현리 조잠마을 남쪽 바닷가 언덕 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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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신앙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정월 보름날 |
신당/신체 | 당집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삼현리 조잠마을에서 음력 정월 보름날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공동 제사.
[개설]
조잠마을은 한때 경상도와 전라도의 배들도 정박하던 포구였지만, 1960년대 후반 제방이 축조되면서 포구 기능이 상실되었다. 이후 1980년대 말에 남포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바다와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조잠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날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다. 예전에 당제는 장소를 달리하여 ‘당제-뱃고사-용왕제-거리제’ 순으로 지냈으나, 마을 환경과 주민들의 의식이 바뀌면서 뱃고사, 용왕제, 거리제는 지내지 않는다. 제사 절차는 ‘재배-헌작-축원-소지 올리기-음복’ 순으로 진행된다.
[연원 및 변천]
삼현리 당제는 마을 어른들이 예전부터 지내온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제일을 정월 초순으로 택일하였지만, 정월 보름날로 변경되었다. 예전에는 당제가 끝나고 선주들이 별도로 뱃고사를 지냈으며, 당주가 바닷가에 가서 용왕제를 지내고, 마을 앞 다리에서 거리제를 지냈다. 지금은 뱃고사, 용왕제, 거리제를 지내지 않는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집은 마을 남쪽 바닷가 언덕 위에 있는 목조 기와 한 칸이다. 1970년대에 해풍에 무너져 다시 건립하였는데, 대들보는 예전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대들보 상량문에는 ‘숭정기원후병신팔월이십육일진시입주상량임좌원갑인성조(崇禎紀元後丙申捌月二十六日辰時立柱上樑壬坐原甲寅成造)’라고 쓰여 있다. ‘숭정기원후병신’은 서기로 환산하면 1656년(효종 7)이다. 주민들은 당집에 당할머니가 있다고 믿어 바늘, 실, 꽃 등을 놓아 둔다.
[절차]
마을에서는 정월 초순에 생기복덕(生氣福德)[그날의 운수를 알아 보는 방법 중 하나로 택일(擇日)의 기초가 됨]을 가려 당주(堂主)를 선정한다. 당주는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비린 음식, 술, 외출 등을 삼가고 목욕재계를 한다.
당주집 대문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놓아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 당주는 제사가 끝나도 1년 동안 근신한다. 제비(祭費)는 풍물패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풍장을 치고 걸립(乞粒)[풍물을 치고 집집마다 다니며 축원을 해주고 돈과 곡식을 구하는 민속놀이]을 하였다. 요즘은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의 전날 새벽에 대천장에 가서 제물을 구입한다. 마을 주민들은 대동샘을 깨끗이 청소하고, 당제를 지내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도록 포장을 덮는다. 샘 주변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를 놓는다.
정월 보름날 11시경에 당제를 지낸다. 당주와 부정 없는 마을 사람 4~5명이 풍물패와 함께 당집으로 간다. 당집 안에는 당주만 들어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서 메와 탕, 산적을 만든다. 당집 선반 위·아래, 당집 밖에 제물을 차린다. 제물은 메, 탕, 술, 명태, 산적[두부, 소고기], 천엽, 간[날 것] 등을 놓는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에 당주는 술을 올리고 두 번 절을 한다. 이어 예전에는 축문을 읽었으나,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축원으로 대신한다. 축원이 끝나면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대동 소지, 당주 소지, 제에 참석한 사람들의 소지와 대주 소지를 올린다. 간단히 음복을 하고 북어를 종이에 싸서 당집 안팎에 걸어 둔다. 그런 다음 당주 일행이 제물을 거두어 마을회관으로 내려온다.
[부대 행사]
제사가 끝나면 마을회관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제사 경비를 결산하는 회의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