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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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따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녹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도서지역에서 밭을 갈기 위해 사용하였던 도구.
[개설]
따비는 1990년대 이전까지 도서지역의 밭을 갈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연원 및 변천]
따비는 쟁기의 원시적인 형태로, 청동기 시대부터 사용하였다고 밝혀져 있다. 서유구(徐有榘)[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따뷔’라고 부르는 연장을 소개하면서, “호남 연해의 도서 지방에서 자갈이 많아 소쟁기를 쓸 수 없는 데서는 때로는 답리로 갈기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돌이 많아 쟁기를 사용할 수 없는 도서지역의 기경(起耕)[흙갈이]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녹도리에 한 자루가 남아 있다.
[형태]
녹도에서는 밭을 갈 때 따비를 사용하였는데, 지역어는 ‘따부’이다. 녹도는 『한국수산지』에 화전 100두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논은 없고 밭만 있으며, 밭을 가는 도구로 따비를 사용하였다. 현재 녹도에 남아 있는 따비는 길이 130㎝의 곧은 소나무로 손잡이를 만들고, 두 개의 쇠발을 끼우는 몸통은 단단한 꾸지뽕나무로 만든 쌍날따비이다. 쇠발은 길이 40㎝, 둘레 18㎝이며, 가로 30㎝, 높이 8㎝의 소나무 발판 위쪽에는 손잡이를 끼우고, 아래에는 날을 끼웠다.
[사용 방법]
원시적인 쟁기인 따부는 콩, 수수, 메밀, 보리, 밀 등의 밭작물을 심기 위해 밭을 갈 때 사용하였다. 날이 뾰족한 따비는 풀이나 나무뿌리, 잔돌이 많은 녹도의 밭에서 사용하였는데, 실제 따비를 사용한 이들은 2022년 현재 90세 이상의 노인으로, 1940년대 이전에 주로 사용한 도구이다. 발판을 밟아 따비 날을 흙 속에 박아 넣고 손잡이를 뒤로 당겨 흙덩이가 들려 올라오면, 자루를 비틀어 흙을 고르게 일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