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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386
한자 安民-戰鬪
영어의미역 Battle of Anmingogae Pas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593년 9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593년 9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안민고개 지도보기
관련인물/단체 최강

[정의]

조선 중기 경상남도 창원군 안민고개에서 의병장 최강이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

[역사적 배경]

임진왜란 중 조선은 명군의 지원으로 평양성을 탈환한 후 왜적과의 전투는 소강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각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들은 떼를 지어 살인과 강간 및 약탈의 만행을 상습적으로 일삼았다. 또한 점령지 지역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농작물을 약탈하였다.

[발단]

노현 전투가 발발한 지 1년여가 지난 1593년(선조 26) 9월 하순경 창원에 주둔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막료가 지휘하는 일부 병력은 함안 방면에 나와 지역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농작물을 약탈하였다. 의령현에 있던 전라병사(兵使) 선거이(宣居怡)가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출동하였으나 대패하여, 선거이는 왜적의 조총에 맞아 부상당하고 군사들은 패퇴하였다.

[경과]

고성에 주둔하고 있던 의병장 최강(崔堈)이 관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급히 이동 중에 김해에 있던 왜장이 거느리는 군사와 안민고개에서 만나게 된다. 당시 최강은 이곳에 미리 복병을 배치해 놓았으나, 왜적은 오히려 복병을 기습하게 되고 의병장 최강 이하 모든 군사가 적의 포위망에 걸려 사태가 위급하게 되었다.

이때 최강은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돌입하여 적을 공격하니 왜군이 후퇴하였다. 최강은 단기로 적중에 돌입하여 종횡무진 분전하여 전신이 적의 피로 물들었으며, 이 틈을 이용하여 포위된 군사들을 이끌고 후퇴하는 왜적들을 공격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결과]

의병장 최강이 분전한 안민고개 전투는 아군의 손실이 거의 없었다. 최강은 이 전투에 이어 전후 수차의 격전에서 역전을 되풀이하였는데, 그의 위용은 무적에 가까워 명성이 남쪽 지방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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