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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성 전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385
한자 昌原城戰鬪
영어의미역 Changwonseong Fortress Battl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왜란
발생(시작)연도/일시 1592년 9월 25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592년 9월 25일 - 창원성 전투 종결
발생(시작)장소 창원성
관련인물/단체 유숭인

[정의]

임진왜란창원성에서 조선 관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역사적 배경]

창원은 왜적 무리가 진주와 전라도 지역을 공략하는 데 있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요충지였다. 즉 부산에 상륙한 왜적은 3로(路)로 나누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중로(中路),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동로(東路),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는 서로(西路)로 진격해 왔다. 창원 지역을 내습한 왜적은 구로다 나가마사의 제3군 휘하 병력이었으며, 김해와 창원·진주를 공략하였다.

[목적]

창원성을 수비하고 있던 경상우병사 유숭인(柳崇仁)은 왜적이 김해성을 함락하고 창원으로 진격해 온다는 보고를 접하고 창원성에서 출동하여 노현 일대에서 왜적을 방어하고자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노현 일대에서 퇴각하여 창원성으로 돌아와 성을 지키고자 하였다. 적장인 구로다가 지휘하는 제3군 병력은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진주 등지를 공략하기 위하여 창원 지역을 내습하고자 했으며 노현 전투에서 승기를 잡고 그 기세로 창원성을 점령하고자 했다.

[발단]

창원성 전투노현 전투에서 바로 이어지는 전투다. 부산을 떠난 왜적은 김해성을 함락한 후 약 2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1592년(선조 25) 9월 24일 서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경상우병사 유숭인은 약 2천여 명을 거느리고 창원성에 있다가 이러한 보고를 접하고 출동하여 노현 일대에 포진하였다.

[경과]

24일 오후부터 적의 척후병이 나타나고 곧이어 선봉대가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산야(山野)가 모두 인마(人馬)로 뒤덮인 듯하고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때때로 함성이 요란스럽고 위협하는 총포소리가 소란하였다. 유숭인은 진중에 명령하여 함부로 활을 쏘지 못하게 하고 인기척을 죽이고 기다리게 하였다.

왜적은 아군에게 계략이 있는지 의심하여 급히 공격하거나 포위하여 오지 않았다. 오후 4시경부터는 각 진에서 연막을 치고 신중하게 공격을 준비하는 듯했다. 이 때 적병 몇 명이 진 앞에 나타나 내부를 살피려고 말을 탄 채로 기웃거리자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려 부장의 명령으로 화살을 집중 사격하여 격퇴시켰다. 그리고 이날 밤을 새웠는데 적진에는 진을 밝히는 불이 20리 앞들에 밝았고 인마의 고함소리가 요란하였다.

다음날 25일 오전 10시경부터는 총포를 쏘면서 포위작전으로 진격해 왔다. 아군과 적의 병력차가 많았으므로 진지를 고수할 도리가 없음을 판단하고 퇴각하여 창원성 안으로 들어와 수비하였다. 왜적들은 창원성을 향하여 진격해 왔으며 이날 밤 적병 80여 명이 성안으로 불시에 난입하여 민가들을 불태웠다.

아군은 왜적의 주력군이 내습한 것으로 착각하고 교전하면서도 당황한 나머지 병사들이 서로 눈치만 살피니 유숭인은 크게 탄식하고 군사를 수습하면서 사화촌을 거쳐 마산포로 철수하였다. 유숭인이 성을 버리고 퇴각하면서 창원성은 왜적들에게 점령당하였다. 이 후 왜적은 창원과 함안에 주둔하여 온갖 만행을 자행하면서 진주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고자 하였다.

[결과]

유숭인이 거느린 2천 명과 왜적 2만여 명의 병력이 대치하고 교전한 노현 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왜적의 기세를 꺾지 못하고 창원성으로 퇴각하였으나 뒤따라온 왜적들을 격퇴하지 못하고 창원성은 왜적들에게 점령되었다. 전투에 패하면서 창원 지역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왜적은 창원과 함안에 주둔하면서 온갖 만행을 자행하고 진주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고자 하였다.

전쟁이 발발한 지 2년 뒤, 울산의 서생포와 동래·부산·양산·김해·웅천·창원 등 해안선에 왜적이 집중해 있었다. 왜적과 전투하다가 함안과 진주 사이에서 전사한 조선 군사가 수만 명에 달하였고, 왜적은 경상 좌도와 경상 우도에 걸쳐 세력을 수백 리에 뻗쳐 약탈을 자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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