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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54
한자 舊鎭海市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사항시기/일시 757년 - 웅지현이 웅신현으로 개칭. 의안군으로 편입
특기사항시기/일시 1018년 - 웅신현, 의안군, 합포현 금주로 편입
특기사항시기/일시 1407년 - 웅신현 내이포 개항
특기사항시기/일시 1452년 - 웅신현과 완포현 통합하여 웅천현으로 개칭
특기사항시기/일시 1510년 4월 4일 - 삼포왜란 발발
특기사항시기/일시 1544년 - 내이포 왜관 폐쇄, 부산포 이전
특기사항시기/일시 1592년 - 이순신 장군 안골포 해전 승리
특기사항시기/일시 1895년 - 웅천현 진주부 웅천군으로 개편
특기사항시기/일시 1896년 - 진주부 웅천군 경상남도 웅천군으로 개편
특기사항시기/일시 1905년 - 러일 전쟁 때 진해만 기지 건설
특기사항시기/일시 1908년 - 진해군 폐지
특기사항시기/일시 1910년 - 진해에 일본 군항 건설 착수
특기사항시기/일시 1912년 - 웅중면, 웅서면 포함하는 진해면이 됨
특기사항시기/일시 1914년 - 웅천군 폐지, 진해면 창원군에 편입
특기사항시기/일시 1916년 - 진해 요항부 설치
특기사항시기/일시 1931년 - 진해면이 진해읍으로 승격
특기사항시기/일시 1946년 - 해양 경비대 창설
특기사항시기/일시 1949년 - 해병대 창설
특기사항시기/일시 1955년 9월 1일연표보기 - 진해읍이 진해시로 승격
특기사항시기/일시 1973년 7월 1일 - 창원군 웅천면이 진해시에 편입
특기사항시기/일시 1983년 2월 15일 - 의창군 웅동면이 진해시에 편입
특기사항시기/일시 2010년 7월 1일 - 진해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로 편입
진해구청 진해구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진해대로 1101[풍호동 1]지도보기

[정의]

2010년 7월 1일 창원·마산·진해시가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이전의 진해.

[개설]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이전의 진해시는 조선 시대에 웅천 혹은 웅신 등으로 불렸다. 1910년 일본에 의해 군항 및 시가지가 새롭게 건설되었고 1912년에 기존의 웅중면과 웅서면을 포함하는 진해면이 되었다가, 1931년 진해읍으로 승격하였다. 해방 이후인 1955년 9월 1일에 진해읍이 진해시로 승격되었다.

[자연 지리적 환경]

진해는 한반도의 동남 끝, 경상남도의 중남부 진해만을 끼고 형성된 지역이다. 전체적인 육지의 형태는 산맥과 바다 사이의 좁고 긴 모양인데, 총 면적은 110,10㎢이다. 토지 이용 현황은 임야가 시 전체의 67%이상이며, 경작되는 논은 9%, 밭은 5.1%, 대지가 11%, 기타 12%이다.

진해의 지형은 배후에 500m 내외의 경사가 급한 산지가 병풍처럼 감싸고, 남쪽에는 소 반도와 도서, 그리고 크고 작은 만입이 발달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되어 있다. 주산지가 해안선과 평행하게 달리기 때문에 산지 계곡부에서 발원한 하천의 유로가 짧아 충적지의 발달이 적다는 점이 진해 지형의 큰 특징이다.

산지를 살피면, 북쪽으로는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끝부분인 구 창원시와 경상남도 김해시의 경계 지역에 솟아있는 불모산[801.7m]을 큰 축으로 하여 서쪽으로 장복산[582.2m]-산성산[400.4m]이 병풍처럼 이어져 구 창원시와 구 마산시의 경계가 된다. 동쪽으로는 화산[798.4m]-굴암산[662m]-보배산[478.9m]-부인당산으로 연결되면서 경상남도 김해시와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경계를 이룬다.

구 진해시의 남쪽은 진해만으로 부도, 초리도, 수도, 연도, 송도 등의 크고 작은 20여 개의 도서가 있고, 구 마산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거제시와 경계를 이룬다. 해안선은 동-서의 직선거리 21.9㎞보다 약 5배에 이르는 107.7㎞일 정도로 해안선의 출입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의 일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진해는 바다와 도서 지역을 제외한 육지만으로 볼 때 동에서 서로는 길고, 남북으로 짧은 모양을 하고 있어 배후 산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지형은 급경사가 많다. 따라서 사람이 거주하기에 양호한 지역은 석동에서 자은동 일대, 웅천의 서중동, 남문동 일대, 웅동의 소사에서 마천 일대 등으로 한정적이다. 계곡에서 발원한 하천은 곧바로 진해만으로 유입되는데 여좌천, 중초천, 신니천, 동천, 소사천, 대장천, 두동천이 있으며 유로 거리가 짧고 주변의 충적대지도 적다.

지리적 환경으로 볼 때 진해 지역은 3개의 소 지역권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먼저 진해 중심권은 창원시 삼귀동과 경계를 이루는 북서 외곽으로부터 불모산-웅산-천자봉-합포 해안으로 이어지는 능선까지 이며,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중심가에 해당된다. 두 번째 웅천권은 웅천현 치소가 있던 웅천 지역이다. 진해의 중앙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불모산-웅산-자마산-흰돌메-웅포 해안을 경계로 웅동권과 경계를 이룬다. 세 번째 웅동권은 소사, 마천, 두동, 안골, 용원까지 포함하는데 부산과 인접한 용원, 안골 일대는 국가 공단, 신항만이 들어서 있다.

[행정 구역]

2010년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의 진해시는 15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동, 태평동,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경화동, 병암동, 석동,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웅천동, 웅동 1동, 웅동 2동이다.

[진해의 역사]

1. 고대

삼국 시대에는 가야 영역에 속했으며, 가야 멸망 후 신라의 웅지현(熊只縣), 완포향(莞浦鄕)이었다가, 757년에 웅지현웅신현으로 개칭되어 의안군에 소속되었다.

2. 고려 시대

고려 건국 후 완포향이 현으로 승격되었고, 1018년(현종 9)에 의안군, 합포현과 함께 금주[현 경상남도 김해시]의 속현이 되었다.

3. 조선 시대

1407년(태종 7) 웅신현내이포[제포]가 개항되어 왜관이 설치되었다. 세종 때는 제포에 수군첨절제사영이 설치되어 안골포 등 8진(鎭)을 관할하였다. 1452년(문종 2) 웅신현완포현이 합쳐져 웅천현으로 개칭되었고 현감이 설치됐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났고, 평정된 이후 웅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곧 현으로 환원되었다. 1544년에 왜관이 폐쇄되어 부산포로 옮겨졌다. 1592년(선조 25) 이순신 장군이 안골포 해전에서 승리했다.

4. 근대

1895년 지방 관제 개정으로 진주부 웅천군으로, 1896년에는 경상남도 웅천군으로 개편되었다. 1905년 러일 전쟁 때 일본 함대가 진해만을 기지로 삼고 각종 시설을 건설하였다. 1908년 마산 진동 지역에 있던 진해군이 폐지되자 일본인들이 진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10년 일본이 군항 건설에 착수하였다. 1914년 웅천군이 폐지되어 창원군에 편입되었다. 1916년 진해 요항부가 설치되었다. 1931년에 진해면이 진해읍으로 승격되었다.

5. 현대

1946년 해양 경비대, 1949년 해병대가 창설되면서 해군의 요람이 되었다. 1955년 9월 1일 진해읍이 진해시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웅천면이 진해시에 편입되고, 1983년 2월 15일 의창군 웅동면이 진해시에 편입되었다. 2010년 7월 1일 창원·마산·진해시가 통합되어 창원시 진해구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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