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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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화(金炳和)[1900~1946]는 창원군 웅동면(熊東面) 계광학교(啓光學校) 교사 주기용(朱基溶)의 제의로 인근 웅천면(熊川面)의 문석주(文碩柱), 정운조(鄭雲祚)와 함께 1919년 4월 3일의 ‘웅동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김병화는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 2천여 장을 등사하고 태극기 600여장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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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일성(金逸成)[1901~1952]은 1919년 웅동면 마천리(馬川里)의 주기용(朱基溶), 배종인(裵鍾仁), 배건수(裵建守) 등과 주도하여 4월 3일의 ‘웅동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김일성은 마천리(馬川里)의 문석주(文碩柱), 정운조(鄭雲祚), 김병화(金炳和)에게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여 군중을 동원하고 태극기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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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농민 운동 단체. 1920년대 중반 이후 농민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전국 각지에는 수많은 농민 운동 단체들이 생겨났다. 특히 1930년대 초반에는 농민 운동 단체가 급격히 증가했다. 총독부의 지원을 받는 개량적 농민 단체에서부터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혁명적 농민 조합에 이르기까지 그 성격은 다양했다. 농민 운동의 내용에서도 생존권 확보 투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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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항일 운동가. 마산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해방 운동 비밀 결사 조직인 조선 국권 회복단 마산 지부에서 안확·이형재·김기성·배중세(裵重世) 등이 활동하였다. 1. 창원 읍내 3월 중순 들어 경상남도 각지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창원 읍내에서도 애국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 만세 운동이 비밀리에 계획되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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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진해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석주(文錫柱)[1899~1934]는 1919년 4월 3일에 경남 창원군 웅천면(熊川面) 마천리(馬川里)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거사를 도모하던 중 일경(日警)에 체포되었다. 웅천의 독립 만세 운동은 계광 학교(啓光學校) 교사 주기용(朱基溶)의 제의하고 문석주, 김병화(金炳和), 정운조(鄭雲祚) 등이 참가 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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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진해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배종인(裵鍾仁)[1901~1965]은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시 웅동면(熊東面)의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계광 학교 교사 주기용(朱基瑢), 동지 정운조(鄭雲祚), 문석주(文錫柱), 김병화(金柄和)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우고 군중 동원에 총력을 다했다. 거사 당일, 이른 아침부터 마천리(馬川里) 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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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때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 마산 지역 일제 강점으로 인한 억압과 수탈은 일부 매판자본가·기생지주(寄生地主)들을 제외한 우리의 대다수 민중들을 몰락과 고통으로 몰고 갔다. 마산 지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마산에 1909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마산 출장소를 설치하고, 농민들의 토지 박탈과 고율의 소작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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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진해 지역에서 지주와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횡포에 맞서 소작 관계 개선과 농조 건설을 위한 농민 운동. 지나친 소작료의 징수 고리대의 악용 등 농민들은 늘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여기에 마름들의 농간과 그들에 의한 소작권의 빈번한 이동으로 소작 농민들의 삶이 매우 힘들어졌다. 이에 지주와 동척의 횡포에 맞서 소작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농민 조합의 건설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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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 지역의 독립운동가. 정운조(鄭云朝)[1888~1951]는 1919년 4월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 지역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적으로 활약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웅동면 계광 학교의 교사인 주기용(朱基容) 등이 웅동면 사무소에서 주도한 4월 3일 만세 운동에 참여 하였는데, 이 시위는 당시 인근에서 가장 큰 시위였다. 시위가 있던 날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