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구락부
-
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 출신의 사회운동가. 경상남도 마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마산에서 사회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8·15 해방 이후에는 마산시 인민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김명규(金明奎)[1892~?]는 보통학교 졸업 후 보통 문관(普通文官) 시험에 합격하여 군속(軍屬)으로 재직하다가 3·1운동 직후 그만두었다. 이후 마산 구락부 부원이 되...
-
마산 출신의 사진 예술가. 남기섭(南基燮)[1922~2007]은 10살이 되던 때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오사카 음악 학교에서 3년 정도 공부하였고 틈틈이 이웃 사진관 주인인 ‘나카후지’의 조수 겸 제자가 되어 어깨너머로 사진 관련 기술을 익혔다. 해방 직후 한국으로 들어와 마산 오동동에 ‘사진 문화사’를 열었다. 남기섭은 이를 계기로 1948년 부산 일보 사...
-
일제 강점기 창원 지역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1910년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인의 저항을 막고 영구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무단 통치를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전역은 수탈과 착취 아래 놓였고 조선의 백성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항쟁하였다. 창원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년 운동·문화 운동·3·1 만세 운동·농민·노동 운동...
-
마산 지역에서 ‘문화 운동’의 구심적인 역할을 한 청년과 노·장년층, 민족주의자와 친일적인 인물이 섞여 다양한 성격을 가진 단체. 1920년 6월에 마산 지역 문화 운동의 구심으로서 마산 구락부가 창립되었다. 마산 구락부는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이었던 민의소(民議所) 건물을 회관으로 사용하고 민의소 대표였던 손덕우가 초대 회장이었다. 마산 구락부는 교육...
-
마산 지역의 기독교 청년 운동 단체. 공려 청년회(共勵靑年會)는 1911년 김윤경, 이순상 등에 의해 창립되었다. 마산 교회의 청년 조직인 공려 청년회(共勵靑年會)는 이윤재 등 교회 청년들에 의해 면려 청년회로 개칭되었다. 마산 구락부와 함께 마산 지역 ‘문화 운동’의 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종교 활동 외에 강연회 토론회를 활발히 개최하여 교육의 보급,...
-
개항기 경상남도 마산 지역에 국내 최초로 설립되었던 비정규 교육 기관. 마산 노동 야학은 마산 지역 유지로서 민족 교육에 뜻을 품은 옥기환(玉麒煥)·구성전(具聖傳) 두 사람이 자금을 내고 명도석·김명규·나인환·팽삼진 등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우려하던 청년 지식인들이 교사로 참여하였다. 이후 마산 구락부가 마산 학원을 설립하여 경영을 맡으면서 마산 중앙 야학교로 명칭이 변...
-
1924년 6월 마산 구락부의 청년부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체. 마산 청년회는 마산 구락부의 재산을 넘겨받으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마산 청년회의 활동은 마산 구락부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계몽의 내용에 반제·반봉건사상, 특히 사회주의 사상이 많이 포함되었다. 창립 이후 마산 청년회는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으나 조선 공산당 창립 이후 활기를 띠...
-
경상남도 마산부 석정(石町)[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 있었던 영화관. 1907년 경상남도 마산부 석정에서 개관된 공회당은 환서좌(丸西座), 수좌(壽座), 도좌(都座), 앵관(櫻館) 및 진해 지역의 묘락좌(妙樂座)와 함께 일제 강점기 지역 주민에게 영화 상영 등 문화 활동을 통해 지역 문화 시설의 역할을 하였다. 시민 극장의 모태는 근대 마산 시민의 토론장...
-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일제 강점기 초등 교육 기관 기능을 수행한 비정규 교육 기관. 일제 강점기 야학은 크게 농민 야학·노동 야학·여성 야학으로 나눌 수 있으며,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애국 계몽 운동·실력 양성 운동·자강 운동 등의 일환으로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야학은 일제 강점기 거의 전 계층의 지지와 참여가 있었던 대중 운동이었으며 192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빠른...
-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연속 촬영한 필름을 연속으로 스크린에 비추어 물건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실제와 같이 재현하여 보이는 영상. 2010년 7월 1일 마산, 창원, 진해의 통합 창원시 출범에 따라 영화의 역사를 3개시 통합하여 개괄한다. 영화의 광범위한 보급은 전기의 공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초기에는 발전기 등을 이용하여 영사기를 가동했겠지만 대형 스크린에서 장편의 영화...
-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시기. 1. 마산 1914년 3월 1일 부·군제의 실시와 함께 창원부 외서면 마산포 일대는 마산부로 개칭되었다. 당시 마산포의 인구는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여 부(府)의 기준에 미달하였다. 그러나 마산항의 병참 기지로서의 중요성과 대일 교역상의 입지적 특성이 중시되어 부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