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원시 귀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구실은 귀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귀곡리(貴谷里)를 달리 부른 이름이다. 귀곡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처음 나온다. 『창원도호부권역 지명연구』에 따르면, 귀곡리의 귀(貴)는 남을 뜻하는 말의 변이형태 귀를 표기한 것이고 곡(谷)은 골이므로 귀곡리는 ‘남쪽에 있는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을 뜻한다 하였다. 구실...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귀산동은 귀산(貴山)에서 연유한 지명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산을 귀산이라고 지칭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귀산동은 남쪽에 있는 산성산 부근에 형성된 마을이다. 『호구총수』에 귀산리라는 지명으로 처음 등장한다. 당시에는 웅천현(熊川縣) 하서면(下西面)에 속하였는데, 1908년에 창원군에 편입되었다. 1910...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던 칠원현의 귀산포(龜山浦)에 설치된 진(鎭). 조선 시대에도 군현의 읍명은 시기에 따라 통합과 이속이 반복되기도 하였다. 귀산(龜山)은 칠원현의 남쪽으로 70리에 있었는데 본래는 성법부곡(省法部曲)이었다. 고려 때 현으로 승격하여 귀산현[구산현]이라 칭하였다가 웅신현(熊神縣)에 예속시켰다. 후에 금주(金州)에 예속시켰다가 공양왕 때 칠원에 내속(...
석교마을 500-1번지에 살고 있는 이종현 옹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공직에 몸을 담았던 분으로, 1973년 마산시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마산시 창원지구출장소를 거쳐 창원이 시로 승격되면서 창원시청 공무원으로 재직하여 1995년 정년퇴임까지 22년간을 근무하였다. 이종현 옹의 가계는 마을 이장 일을 3대째 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종현 옹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석교마을은 마산항으로 드나드는 각종 크고 작은 선박들을 볼 수 있는 마산항의 아가리에 해당한다. 현재 창원공단에서 생산되는 각종 상품의 대부분도 이곳을 거쳐 전 세계로 수출되는 등 물류 이동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바닷길이 일제강점기에는 황포돛배의 뱃길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흔히 석교마을 사람들은 황포돛배를 ‘장배’라고도 불렀는데...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삼귀사람(귀현, 귀곡, 귀산 세 마을 사람을 일컬음) 하면 섬[島]사람부터 연상되었다. 마을 앞은 바다요 뒤는 험준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타지 사람들에겐 섬 아닌 섬사람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196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귀산동의 면적은 10.6㎢에 인구는 3700여 명이었다. 바다를 끼고 있어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30여 세대이고, 나머지 사람...
귀산본동에는 가야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있어, 귀산동의 해안선 끝자락에 자리 잡은 똘똘개마을 역시 그 연원이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귀산동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진해시와 경계를 이루는 귀산동주민센터가 있는 곳의 북동쪽 야산 소나무가 울창한 산속이다. 귀산동 고분군은 창원분지 내의 가야시대 고분군과 비교·연구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