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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278
한자 昌谷洞
영어음역 Changgok-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창곡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원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동
총인구(남, 여) 6명(남 3, 여 3)
가구수 3가구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창곡동(昌谷洞)은 창산리(昌山里)와 와곡리(瓦谷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기 때문에 그 명칭의 유래는 창산리와 와곡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산리의 ‘창(昌)’은 남을 뜻하는 ‘~’의 변이 형태 ‘걸’을, ‘산(山)’은 산을 뜻하는 ‘뫼’를 표기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것으로 여겨진다. ‘창’의 훈에 ‘걸다’가 있고, ‘산’의 훈이 ‘뫼’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창산’은 ‘남쪽에 있는 산’을 뜻하는 것이 되며, 창곡동 앞산을 지칭한다.

와곡리는 옛 기록에 의하면 애곡리(厓谷里)의 다른 표기로 여겨지며, 애곡리의 ‘애(厓)’는 ‘벼랑’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로 볼 수 있다. ‘애(厓)’는 ‘수애(水厓)’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곡’은 골짜기를 뜻하는 ‘골’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로 ‘곡(谷)’의 훈이 ‘골’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애곡리는 ‘벼랑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을 뜻하는 것이 된다. 장복산(長福山) 기슭 벼랑에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지명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와곡리는 애곡리를 자음으로 읽게 되면서 변이된 ‘애(厓)’의 자음 ‘와’를 ‘와(瓦)’로 차자함으로서 생겨난 표기이다.

[형성 및 변천]

창곡동(昌谷洞)은 창산리(昌山里)와 와곡리(瓦谷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명명하였으므로, 두 마을의 형성 및 변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와곡리는 1789년(정조 13)에 발간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등장하며,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교남지(嶠南誌)』, 『영남읍지(嶺南邑誌)』 등에서는 애곡리(厓谷里)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조선 말기에는 남면(南面) 도하이운(道下二運)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1912년에 간행된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서는 다시 와곡동이라는 표기로 등장한다. 창산리는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 창산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하남면(下南面)에 속해 있었다.

창곡동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산리와 와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각각 이름을 한 글자씩 가져와 창곡리라 하였다. 1917년에 간행된 『신구 대조 조선전도 부군면리동 명칭 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 창곡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으며, 1973년 7월 1일 이전에는 창원군 웅남면(熊南面)에 속해 있었다.

[자연환경]

장복산 북사면의 산 능선 하나가 남천(南川)을 향해 길게 뻗어 나온 끝에 소규모의 고립된 구릉의 형태로 둥그스름한 높이 100m의 안동산이 있으며, 북사면에 창곡동이 있다. 창곡동은 안동산을 진산(鎭山)으로 하고 있으며, 북쪽의 또 다른 고립된 작은 구릉지로 안산(案山)이 있다. 창곡동의 북쪽 안산 지역은 창원 분지의 남쪽 가장자리에 해당한다.

[현황]

2009년 4월 현재 창곡동에는 3세대에 총 6명[남 3, 여 3]이 살고 있다. 창곡동창원 국가 산업 단지에 포함되어 있어서 다른 마을과는 달리 건물 연속 지구가 형성되어 있다. 창원시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시내와의 접근성은 약한 편이다. 창곡동에서 창원시의 주요 시가지로 가려면, 창원 국가 산업 단지와 한국 산업 단지를 가로지르는 남천을 건너는 삼동교를 지나 창원 대로를 이용하여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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