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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651
한자 龍池公園碑石群
영어의미역 Monuments in Yongji Park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석군
관련인물 윤우신|김복일|박홍미|백선남|민원중|이희하|전광훈|서영보|김노응|박명훈|홍길모|홍우길|김영규|박수진|김영범|김기섭|박위|박지홍
재질 석재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지도보기
소유자 창원시
관리자 창원시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에 있는 비석군.

[개설]

용지공원에 세워져 있는 비석들은 불망비(不忘碑)가 주종을 이루며, 그 외 몇 기의 신도비와 송덕비가 있다. 대부분 조선시대 창원대도호부의 부사와 관찰사 등이 재임 동안에 베푼 선정과 애민정신을 잊지 않고 후대에 널리 알려 표상(表象)으로 삼고자 세운 것들이다.

[건립경위]

용지공원 비석군은 1975년 이후 창원시의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옮겨 세운 것이다. 2008년 ‘창원’ 지명 탄생 600주년을 맞아 경남대학교 교정에 있던 11기의 비석을 이곳에 이전하면서 새로이 정비하였다. 현재 모두 26기의 비석이 안치되어 있다.

[위치]

용지공원 내 영남포정사 동쪽, 공원의 가장자리 부분에 남북 방향으로 두 줄로 세워져 있다. 남쪽 맨 앞에는 부사윤공유애비(府使尹公遺愛碑), 북쪽 맨 끝에는 박위 신도비가 자리하여 있다. 각 입구에는 문인석 2기가 세워져 있다.

[현황]

1. 부사윤공유애비(府使尹公遺愛碑)

창원부사로 재직한 윤우신(尹又新)의 애민 선정을 기려 1581년 3월에 세운 비로, 비문의 내용은 마모가 심하여 파악하기 어렵다. 재질은 사암이며 전체 높이 151㎝, 비신 높이 98㎝, 너비 57㎝, 두께 20㎝이다.

2. 부사김공청직유애비(府使金公淸直遺愛碑)

창원부사로 재직한 김복일의 청렴하고 곧은 정사를 기려 세운 비로, 비문의 내용은 마모가 심하여 파악하기 어렵다. 건립연대 미상이며, 재질은 사암이며 지붕돌의 높이는 46㎝, 너비 57㎝, 두께 26㎝이다. 비신 의 높이는 77㎝, 너비 52㎝, 두께 18㎝이다.

3. 대도호부사박공홍미청덕선정비(大都護府使朴公弘美淸德善政碑)

박홍미가 부사로 재직할 때 청렴한 덕으로 잘 다스렸다 하여 1630년 11월에 세운 비이다. 재질은 사암이며, 이수와 비신이 한 몸이다. 전체 높이 170㎝, 비신 높이 116㎝, 너비 57㎝, 두께 17.5㎝이다.

4. 대도호부사백후선남청정비(大都護府使白侯善南淸政碑)

부사 백선남의 정사가 밝고 깨끗하였음을 기려 1637년 10월에 새긴 비이다. 재질은 백운모 화강암이다. 전체 높이 181㎝, 비신 높이 124㎝, 너비 59㎝, 두께 16㎝이다. 병자호란 때 부병(府兵)을 이끌고 광주 쌍령전투에서 전사하였다.

5. 대도호부사신후명식이교불망비(大都護府使申侯命式移校不忘碑)

부사 신명식이 재임 시, 절을 폐하고 그 자리에 향교를 옮겨지었는데, 그 덕이 높고 크다 하여 1708년 2월에 세운 비이다. 사암으로 마모가 심하다. 높이 172㎝, 너비 73㎝, 두께 20㎝ 이다.

6. 부사민공원중청덕선정비(府使閔公遠重淸德善政碑)

부사 민원중의 정사가 맑고 깨끗하고 공정하였다고 하여 공을 기려 1712년 6월에 세운 비이다. 재질은 사립질사암(砂立質砂岩)이다. 전체 높이 230㎝, 비신 높이 155㎝, 너비 75㎝, 두께 18㎝ 이다.

7. 대도호부사이공희하애민선정비(大都護府使李公希夏愛民善政碑)

이희하가 부사로 재임 시 애민 정신으로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1735년 9월에 세운 비이다. 화강암 재질이며 비갈형이다. 높이 120㎝, 너비 50㎝, 두께 16㎝이다. 비대석은 옮기면서 새로 한 것이다.

8. 행대도호부사전후광훈유애사(行大都護府使田侯光勳有愛詞)

1765년, 부사 전광훈이 4년간 재임하는 동안 고을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내용을 새겼다. 재질은 사암이며, 높이 182㎝, 너비 102㎝, 두께 16㎝이다.

9. 대도호부사서후영보영세불망비(大都護府使徐侯榮輔永世不忘碑)

부사 서영보가 청백리라 할 만큼 덕이 높고 크다 하여 칭송해 1814년 2월에 세운 비이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이수와 비신이 하나의 돌이다. 전체 높이 170㎝, 비신 높이 121㎝, 너비 57㎝, 두께 17㎝이다. 제작 시기와 기법, 형태 등이 관찰사 김노응의 것과 같다.

10. 관찰사김공노응영세불망비(觀察使金公魯應永世不忘碑)

관찰사 김노응이 백성들을 구휼하여 그 덕이 오래 전해지기를 바라며 1814년 6월에 세운 비이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이수와 비신이 하나의 돌이다. 전체 높이 189㎝, 비신 높이 140㎝, 너비 56㎝, 두께 17㎝ 이다. 제작 시기와 기법, 형태 등이 부사 서영보의 것과 같다.

11. 대도호부사박후명훈영세불망비(大都護府使朴侯明勳永世不忘碑)

박명훈이 새로 부임해 여러 병폐를 바로잡았다고 하여 이를 칭송해 1814년 세운 비이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이수와 비신이 하나의 돌이다. 전체 높이는 160㎝, 비신 높이 130㎝, 너비 55㎝, 두께 16㎝이다. 제작 시기와 기법, 형태 등이 관찰사 김노응과 부사 서영보의 것과 비슷하다.

12. 순상국서공기순영세불망비(巡相國徐公箕淳永世不忘碑)

1852년에 건립되었으며, 서기순이 백성을 사랑한 자취가 후대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비문의 내용은 마모가 심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기 어렵다. 역암이며, 전체 높이 195㎝, 비신 높이 136㎝, 너비 53㎝, 두께 18㎝이다.

13. 행대도호부사양후선수휼민영세불망비(行大都護府使梁侯宣洙恤民永世不忘碑)

양선수가 관부의 곳간을 털어 나누어 주니 백성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등의 칭송의 내용을 담아 1857년 3월에 세웠다. 재질은 백운모 화강암이며, 이수와 비신이 하나로 되어 있다. 전체 높이 175㎝, 비신 높이 125㎝, 너비 58㎝, 두께 18㎝이다. 선정으로 임기를 1년 연장 받은 인물이다.

14. 행대도호부사정공주응불망비(行大都護府使鄭公周應不忘碑)

정주응이 고을의 예절을 일으키고 성을 보수하였으며 녹봉을 내어 누각을 세웠다 하여 그를 칭송하는 내용을 담아 1874년 3월에 세웠다. 재질은 백운모 화강암 이며. 전체 높이는 157㎝, 비신 높이 125㎝, 너비 50㎝, 두께 12㎝이다.

15. 대도호부사홍길모선정비(大都護府使洪吉模善政碑)

홍길모가 고을의 원으로 있는 동안 군포를 바로잡고, 특별히 포구의 백성들에게 조세를 경감하여 준 공덕을 기려 1759년 7월에 세웠다. 화강암 재질로 지붕돌과 비대를 갖추었다. 지붕돌의 높이는 36㎝, 가로 73.5㎝, 세로 46㎝이다. 비신은 높이 116㎝, 너비 42㎝, 두께 16.5㎝이다. 현재의 비는 후에 새로 세운 것이다.

16. 순찰사홍공우길영세불망비(巡察使洪公祐吉永世不忘碑)

순찰사 홍우길이 2년간의 재임 동안 많은 은혜를 베푼 것을 기려 세웠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비갈형이다. 비신 높이 162㎝, 너비 50㎝, 두께 16㎝이다. 비대는 원래 것이 아니다.

17. 순상국김공세호영세불망비(巡相國金公世鎬永世不忘碑)

김세호가 창원의 정사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살펴서 조세를 삭감하여 주는 등 덕화를 베풀었다 하여 기려 1874년 3월에 세웠다. 재질은 화강암이고 이수와 비신은 하나의 돌이다. 비의 전체 높이 150㎝, 비신 높이 112㎝, 너비 48㎝, 두께 17㎝이다.

18. 수의사도박공이도염창평연혁불망비(繡衣使道朴公履道塩倉坪沿革不忘碑)

박이도가 수해로 인한 피해가 극심한 중에 어사가 내려와 은혜를 베풀어 주니 잊지 못할 일이라 하여 1874년 12월에 세웠다. 재질은 백운모 화강암이며 형태는 비갈형이다. 높이 106㎝, 너비 43㎝, 두께 14㎝이다. 염창의 백성들이 세웠다.

19. 행대도호부사이후용익애민불망비(行大都護府使李侯容益愛民不忘碑)

이용익이 녹봉을 내어 백성을 구제하는 등 여러 혜택을 베풀었다고 하여 그 공을 기려 1878년 2월 세웠다. 재질은 백운모 화강암이며, 지붕돌과 비신이 한 몸으로 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143㎝, 비신 높이 100㎝, 너비 46㎝, 두께 16㎝이다. 창원 5면의 백성들이 세웠다.

20. 전운어사홍공종영영세불망비(轉運御使洪公鍾永永世不忘碑)

홍종영이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 4,000냥을 기부하고 포구에 밀린 조세를 공평하게 처결하였다 하여 1887년 8월에 세운 비이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이수와 비신이 하나이다. 이수 높이 49㎝, 너비 73㎝, 두께 28㎝, 비신 높이 146.5㎝, 너비 60㎝, 두께 21㎝이다.

21. 전참판김해김공영규송덕비(前金參判金海金公永珪頌德碑)

1892년 3월에 김영규의 성품이 어질고 너그러우며 전토를 나누어 주고 수곡을 견감하여 주어 그 덕을 칭송한다고 새겼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지붕돌은 팔작지붕형이다. 지붕돌 높이 42㎝, 가로 83㎝, 세로 48㎝이며, 비신은 높이 132㎝, 너비 51㎝, 두께 20㎝이다.

22. 전감찰박공수진혜민불망비(前監察朴公叟鎭惠民不忘碑)

1909년 2월, 박수진이 동민들을 너그럽게 감싸 주고 부역을 10여 년간 면제하여 주어 그 은혜를 잊지 못한다는 내용을 새겼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지붕돌과 비신이 한 몸이다. 지붕돌 높이 49㎝, 너비 61㎝, 두께 28㎝이며, 비신은 높이 98㎝, 너비 45㎝, 두께 18.5㎝이다. 고을 사람들이 세웠다.

23. 정삼품통정대부전도사김영범시혜불망비(正三品通政大夫前都事金榮範施惠不忘碑)

김영범이 의연금을 내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였으므로 보은의 뜻으로 1921년 8월에 세웠는데, 그 소식을 들은 여러 면의 선비들이 그 내용을 책으로도 메웠다고 하였다. 형태는 비갈형이며, 비의 높이는 137㎝, 너비 38㎝, 두께 18.5㎝이다.

24. 효자참군박시명정표려(孝子參軍朴始明旌表閭)

박시명이 부모가 돌아가시자 시묘하며 애통함이 절실하였는데 상을 마치고도 음식을 올리며 영전에 고하였다는 내용이다. 1502년 조정에서 정려가 내려지자 정문에 세웠던 비이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15㎝, 너비 43㎝, 두께 30㎝이다.

25. 사인김기섭송덕기념비(士人金基燮頌德記念碑)

1871년 4월, 김기섭이 돈과 인부를 내어 개천을 수리하여 물을 통하게 하니 가뭄과 홍수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지붕돌은 높이 40㎝, 가로 83㎝, 세로 61㎝이며, 비신은 높이 145㎝, 너비 45㎝, 두께 18㎝이다.

26. 고려충의백정국군밀성박공신도비(高麗忠義伯靖國君密城朴公神道碑)

고려 말기~조선 초기의 인물 박위는 아홉 공신 가운데 한 사람이며, 경상도 순문사로서 왜구 토벌에 대한 공을 서술하는 등 박위 장군의 업적을 기린 신도비이다. 비신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는 198㎝, 너비 69㎝, 두께 33㎝이다. 지붕돌은 가로 134㎝, 세로 96㎝이다. 1922년 박위의 후손 박지홍이 세운 비이다.

[의의와 평가]

용지공원에 있는 비석군은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사들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주요 사적이다. 현재 창원시청 문화관광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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