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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076
한자 孔俯
영어음역 Gong Bu
이칭/별칭 백공(伯恭),어촌(漁村),수선(修仙)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시
성별
몰년 1416년연표보기
본관 창원
대표관직 검교한성윤

[정의]

고려 말 조선 초 창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백공(伯恭), 호는 어촌(漁村)·수선(修仙). 할아버지는 공소(孔紹)이고, 아들은 공달(孔達)이다.

[활동사항]

공부는 1376년(우왕 2) 과거에 급제하여 전의부령(典儀副令)과 예조총랑(禮曹摠郞)을 거쳐 집현전태학사가 되었다. 그 무렵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등과 교유하였다. 조선 왕조에 참여하여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 별감제조, 우군동지총제, 검교한성윤을 역임하였다.

공부는 도교에 조예가 있어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 소격전 제조(昭格殿提調)를 겸직하면서 1408년 10월 이 후 서장관으로 여섯 번이나 명(明)에 가서 태종의 명에 따라 중국 도교의 초사(醮祀) 등 도교의식을 배워 왔다. 또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광연루(廣延樓), 상림원(上林園) 등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이런 연유로 1413년 4월 부친상 중임에도 태종공부에게 수진(修眞, 장생불로의 수련법)에 관해서 물어 보기도 하였다.

1416년 천추사(千秋使)로 명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태종실록(太宗實錄)』에 수록된 졸기(卒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천추사(賀千秋使) 인녕부윤(仁寧府尹)인 공부가 경사(京師)에서 졸하였다. 서장관이었던 전 예조정랑 박조(朴藻)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7월 29일에 공부가 남경(南京) 회동관(會同館)에서 병들어 죽었는데, 황태자가 치제(致祭)하기를, ‘조회를 받는 날에 예의(禮儀)가 엄숙하고 공손하였다. 여차(旅次)에서 죽었으니, 불쌍하도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아뢰어 영지(令旨)를 받들어서 뼈를 불살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다. 태종이 불쌍히 여겨 쌀·콩 50석과 종이 1백 권을 부의(賻儀)하고 중사(中使)를 보내어 제사를 지내 주도록 하였다."

[학문과 사상]

공부는 성품이 너그럽고 솔직하며 우스갯소리를 좋아하였으며, 청렴하고 조용하고 욕심이 적어 물건을 가지고 다투는 일이 없어 세상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또 도가(道家)를 몹시 좋아하여 병이 깊어지자 도사(道士)를 청하여 초제(醮祭)를 베풀기도 하였다. 또 초서와 예서에 매우 능하였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필적으로 경기도 양주 회암사(檜巖寺)의 묘엄존자무학선사탑비(妙嚴尊者無學禪師塔碑)와 충청도 한산에 있는 한산군이색신도비(韓山君李穡神道碑)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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