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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367
한자 白雲庵
영어음역 Baegunam
영어의미역 Baegunam Hermitage(Wolbaek-ri)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월백리 산75지도보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안순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건립연도/일시 통일신라시대

[정의]

통일신라시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월백리에 있었던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개설]

백운암은 통일신라시대의 고찰(古刹)이지만 근대까지 장기간 폐사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60년대 초반 월백리 마을 사람들이 중건을 했고, 처음에는 대한불교 법화종에서 관리를 하였다. 이 후 1980년대 초반부터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변경되어진 암자이다.

[건립경위 및 변천]

백운암이 위치한 백월산에 대해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흥법편에 노힐부득(努肹夫得)달달박박(怛怛朴朴)의 수도와 성불 과정을 전하는 장면에 잘 묘사되어 있다. 백운암은 지금의 백월산 남사(南寺) 위쪽 200m 정도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 고찰인데, 달달박이가 머물며 아미타불을 경례·염송했다고 전한다. 이 후 오랫동안 폐사 상태로 있다가, 1960년대 초반 동네 사람들이 비구 박태진과 흑운자의 거주를 위하여 중창하였다고 한다.

박태진은 15년간 거주하다가 떠나고, 이 후 흑운자가 여러 승려들을 모시면서 이곳을 관리하였다. 2003년경 흑운자가 절을 떠남으로써 여러 객승들이 이곳에 머무르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승려들이 모두 떠나고 폐사 상태이다. 비록 지금은 폐사 상태이지만 백운암은 통일신라시대 창원 지역 불교의 발전과 그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현황]

원래 백월산백운암 주위에는 50여 곳의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절골·반야동·남사·점상골(중상골) 등의 지명이 전하나, 백운암을 포함한 모든 사찰이 폐사 상태라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백운암에는 남사에서 옮겨 왔다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과 석불상이 최근까지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석불상은 현재 행방이 묘연하고 석등은 방치되어 기둥의 받침대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도 이 근방에서는 많은 기와 조각과 석물(石物)을 발견할 수 있다. 암자 주위에는 2층으로 이루어진 석축이 있어 부분적으로나마 옛 암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작은 옹달샘이 하나 있는데 가물어도 수원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이 질병을 치유하는 약수라고 믿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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