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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804
한자 遷善洞安民洞祭
영어의미역 Cheonseon-dong Anmin Village Tutelary Festival
이칭/별칭 수문당 당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 454
집필자 노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6월 첫째 일요일
의례장소 수문당
신당/신체 수문당|당나무(푸조나무)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안민마을에서 6월 첫째 일요일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창원시 천선동불모산 자락에 있는 신라 고찰 성주사가 건립되기 전부터 형성된 오랜 연원을 가진 마을로서 당목과 당집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천선동 안민 동제는 수문당제라고도 하며, 정초에 당산할매를 모시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일제의 감시의 눈을 피해 몰래 지낼 만큼 그 유구한 전통의 맥을 이어온 창원의 대표적인 제의이다.

[연원 및 변천]

천선동 안민 동제, 즉 수문당제의 유래를 짐작하는 전설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천선동성주사로 오르는 길목이었다. 어느 날 성주사의 스님이 탁발을 나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스님을 보고 내외를 한다고 나무 뒤에 숨었다는 데서 ‘숨었다’고 하여 ‘숨은당’이라 했다가 지금은 ‘수문당’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 당산할머니를 어떻게 모시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으나, 이 할머니가 마을 주민을 수호하며 영험이 많다는 것은 이 마을의 오랜 믿음으로 전해진다. 동제 때에는 놋그릇에 음식을 담아 지내는데, 이 제기는 오직 1년에 한 번만 사용하는 것으로, 사용한 후에는 모래씨름장을 파서 밑에 묻어 놓고 다음 해 제일이 되면 다시 모래판을 파서 제기를 꺼내 닦아 사용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동네 구장을 하던 최아무개가 일제 앞잡이를 하느라고 동네 놋그릇 쇠붙이를 모두 몰수해서 상남면에 바쳤다. 그래도 수문당 당산할매 제기는 손대지 못했는데, 어느 날 더 바칠 것이 없자 당산할매 제기를 몰래 파서 면사무소에 바치려고 자기 집에 갖다 놓았다. 그런데 그날 밤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밖에 나갔다가 새벽에 철로에 깔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후 최씨 집안은 완전히 몰락했고 마을에서 축출을 당했다. 이 일은 당산할매가 내린 신벌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믿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설 명절을 지내지 못하게 할 때에도 수문당제는 계속 지냈는데, 주로 새벽에 일본 경찰이 조사를 나오기 때문에 제관이 혼자 밤에 몰래 제를 지냈다. 마을에서 결혼을 했으나 자식이 없고 몸과 마음이 정갈한 사람이 제관이 되어 혼자 음식을 마련하여 밤에 몰래 동제를 올렸다. 제관이 된 사람은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당목 앞을 흐르는 냇가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씨름장 모래판에서 그릇을 파서 닦고 제를 지낸다. 제를 마치면 그릇을 다시 땅에 묻고 제물을 가지고 내려와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음복을 했다. 6·25전쟁 때에도 마을 사람들이 징병으로 많이 끌려갔으나, 한 명도 전사하지 않고 다 돌아왔다고 한다. 이 또한 당산할매의 가호와 영험 덕분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창원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마을이 완전히 헐리고 주민들이 흩어지게 되어 더 이상 정월 수문당제를 지낼 수 없게 되었으나, 조상들이 열성을 다해 지켜온 제사를 그만 두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생각하여 실향민들이 다시 의논을 하여, 현재는 매년 6월 첫째 일요일을 정해서 서울이나 각지로 흩어진 사람들이 이곳 수문당에 모여 당산제를 올리고 큰 잔치를 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현재 당목과 당집 모두 잘 보존되어 있다. 천선동 당집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나 역사가 아주 오래된 당집이다. 석물로 만들어진 당집이 태풍 사라호의 피해를 입어 큰 돌만 남고 유실된 것을 보수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 이 마을 수호신인 당산할매를 모시고 있다.

[절차]

제관이 선정되면 당집과 당목에 왼새끼 금줄을 두르고 숯과 색천을 같이 두른다. 그리고 산에서 깨끗한 황토를 채집하여 당집과 당목을 빙 둘러 한 줌씩 놓는다. 돼지머리, 떡, 막걸리, 메, 나물, 편, 생선, 명태포, 과일 등의 제수로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낸다. 제의는 유교식 절차로 진행되는데, 초헌→독축→아헌→종헌→소지올리기 등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축문]

수문당 할머니께 마을 주민들의 무사안녕과 농사가 잘 되어 풍요롭게 살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부대행사]

동제를 마치면 음복을 하고 씨름놀이, 들돌 들어올리기 등을 했다. 당집 근처에 12개의 들돌이 죽 놓여 있었다. 동제를 마치고 난 후 동네 머슴들의 세경을 정하는데, 이날 세 번째 들돌을 들면 세경이 얼마요, 네 번 돌을 들면 얼마요, 이렇게 정해서 들돌 들기 대회를 했다고 한다. 들돌도 사라호의 피해를 입어 쓸려 내려가고 없다. 현재는 노래자랑, 풍물놀이 등을 하며 동민들이 한데 어울려 논다.

[현황]

현재 자연마을이 없어진 상태라 6월 첫째 일요일에 동제가 열릴 때면 옛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는, 장어국 같은 것을 따로 끓이고 음식을 많이 장만해서 먹으며 노래자랑도 하고 풍물단을 불러 풍물을 치면서 논다. 지금도 여성들 중에는 개인적인 기복을 위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안민마을에서는 해방이 될 때까지 마을 동답 1157.03㎡를 제관이 짓게 하고, 그것으로 제비를 충당했다. 현재 수문당 주변의 약 3305.80㎡ 대지가 동답인데, 개인명의가 아닌 마을 공동명의로 등기를 했다. 천선동 원주민 모두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도록 한 것이다.

[참고문헌]
  • 인터뷰(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안민마을 주민 진윤주, 남, 76세)
  • 인터뷰(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안민마을 주민 손순조, 여, 6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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