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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986
한자 祭禮
영어의미역 Rituals
이칭/별칭 제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집필자 노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례 의식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돌아가신 조상이나 특정한 신명(神明)을 받들어 복을 빌기 위해 행하는 추모 의례.

[개설]

제례란 제사를 지내는 예를 말한다. 현재까지 유지되는 제사에는 차례, 기제, 묘제가 있다. 정월 초하루의 연시제(年始祭)와 팔월 추석의 절사(節祀)는 차례라 하고, 시조묘에서부터 모든 조상들의 묘소에 이르기까지 묘소에 직접 가서 지내는 제사를 묘제라 한다. 묘제는 한식이나 시월에 날을 정해서 지내며, 시제(時祭)라고도 한다.

오늘날 대개 제사라고 하는 것은 선조의 사망한 날을 맞아 지내는 기제를 일컫는다. 제사의 형식은 정성들여 마련한 음식을 진설한 후 절을 올리고 축문을 읽으며 돌아가신 이를 추모한다. 이러한 제례 과정에서 자손들은 조상에게 보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조상의 음덕이 후손에게 내리기를 기원한다.

[변천]

『문공 가례』가 우리나라에 보급되면서 조선 명종(明宗) 이후부터 사대부는 물론 서인에 이르기까지 4대 봉사를 해왔다. 4대 봉사는 부모로부터 고조부모에 이르기까지 제사를 받드는 중국에서도 사대부의 예절인데,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이 제례가 유지되고 있다.

1969년 제정된 「가정 의례 준칙」에 기제의 대상을 부모, 조부모 및 배우자로 한정하여 지내도록 하였고, 행사의 방법도 양위가 모두 별세하였을 경우 합사(合祀)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4대 봉사가 유지되고 합사를 기피하고 있다. 현대 생활 패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제사를 효도의 연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묘사를 묘소에 직접 찾아가 지내지 않고 주로 재실을 이용하거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산소를 한 곳에 모으는 집묘(集墓)가 증가하고 있으며, 합봉(合封)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 제사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절차]

제수 목록은 각 가정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의 제례상은 술, 과일, 어포류, 국[탕]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특산물이나 돌아가신 이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 등도 함께 놓는다. 사화동 밀양 박씨 집안에서는 과일을 놓을 때 조율이시 순서로 놓는다. 제수의 탕은 소고기, 생 명태, 닭고기, 두부, 무를 넣은 3탕을 기본으로 하고, 나물도 고사리, 콩나물, 파란나물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한다. 과일은 대추, 밤, 감 3과를 기본으로 하고 사과와 배를 더하여 5과일을 올린다. 생선은 조기, 돔, 대구를 기본으로 한다.

상남동 전의 이씨 집안에서 올리는 제물은 매, 갱, 탕[소고기·문어·패류·두부·무·간장], 적[소고기], 나물[고사리·도라지·콩나물·파란 나물·숙주], 김치[배추 물김치], 과자[유과·엿·강정], 과일[대추·밤·배·감], 떡[인절미·시루떡], 제주[청주], 포[명태·문어·대구], 회[육회·어회], 식혜[단술], 조기 자반, 초장, 간장, 숭늉 등을 쓴다.

제사는 분향하고 세작(洗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자는 동쪽에, 여자는 서쪽에 자리한다. 신위께서 강림하여 음식을 드실 것을 청한다. 제주가 신위 앞에 나아가 꿇어앉아 분향 배하고 집사가 따르는 술을 받아 올리고 모사 그릇에 세 번 나누어 붓는다. 좌집사가 빈 잔을 본 자리에 올리고 제주는 일어나 두 번 절한다. 강신을 마친 후 제주 이하 모든 참사자가 두 번 절한다. 옛날에는 여자의 경우 4배를 원칙으로 했으나 근래에는 모두 두 번으로 한다.

초헌을 하고 메 뚜껑을 열어 남쪽에 놓고 저를 고른 후 약간 물러나 앉는다. 축관이 곁에서 축문을 읽으면 제주 이하 모든 제관이 꿇어앉는다. 축문 읽기가 끝나면 모두 일어나고, 제주는 두 번 절한다. 아헌과 종헌은 제주의 다음가는 근친자 순으로 한다. 3헌을 하는 것은 천신, 지신, 가신에게 각각 헌작을 하는 것이다.

유식(侑食)할 때 제주가 다시 세 번 나누어 첨작을 하고, 숟가락은 메에 꽂고 젓가락은 시접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식할 때는 사당이 있는 집에서는 참사자 일동이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 대청에서 모시는 집에서는 소등을 한다. 9시 식간[匙食間: 9숟갈의 밥을 먹는 시간] 정도 지나서 축관이 기침으로 인기척을 낸 뒤 모두 제자리로 들어간다.

국을 물리고 숭늉을 올리는 것을 헌다라고 하는데, 이때 숟가락을 물그릇에 가지런히 놓는다. 물그릇에서 수저를 거두고 메 그릇 뚜껑을 덮는다. 모두 재배하고 지방과 축문을 태워 재를 향로에 담고 신을 돌려보낸다. 철상을 하기 전에 3헌관이 먼저 제상 앞에서 음복을 하고, 일반 제관들은 철상한 후에 음복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창원 지역에서는 옛날에 제사를 모실 때는 귀신밥을 따로 차렸다. 오갈 데 없는 귀신들이 남의 제삿날 밥 얻어먹으러 따라와 대문 밖에서 서성거린다고 하여 그 귀신들을 대접하는 의미로, 물밥에 갖가지 제수를 조금씩 섞은 후 대문밖에 종이를 깔고 그 위에 부어 놓는다. 이 풍습은 돌아가신 조상이 상처를 하여 재처와 삼처가 있는 경우, 재처까지는 제사를 지내지만 삼처는 제사가 없었다. 그래서 그 자손들이 귀신밥을 차려서 대문 밖에 내놓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제례의 절차는 음복까지 친다. 음복은 조상들의 음덕을 음식으로써 후손들의 몸에 체화하는 의식이다. 여기에는 조상을 잘 섬기고 복을 받으려는 후손들의 마음이 들어 있다. 제관들의 음복이 끝나면 집안이나 마을 사람들에게도 음식을 나누는 풍습이 있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다음날까지도 어른들을 초대하여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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