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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가 창원에 남긴 흔적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2901
한자 颱風-昌原-痕跡-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세훈

[태풍의 정의]

중심 최대 풍속이 17㎧ 이상인,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 저기압을 말한다. 세계 기상 기구는 열대 저기압 중에서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33㎧ 이상인 것을 태풍(TY), 25~32㎧인 것을 강한 열대 폭풍(STS), 17~24㎧인 것을 열대 폭풍(TS), 그리고 17㎧ 미만인 것을 열대 저압부(TD)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이와 같이 구분하지만, 일반적으로 중심 최대 풍속이 17㎧ 이상인 열대 저기압 모두를 태풍이라고 부른다. 열대 저기압인 태풍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데 북서태평양에서는 태풍(Typhoon), 북중미에서는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에서는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한다.

태풍의 크기는 풍속 15㎧ 이상이 미치는 영역에 따라 소형·중형·대형·초대형으로 분류한다. 태풍의 강도는 중심 기압보다 중심 최대 풍속을 기준으로 약·중·강·매우강으로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태풍이 발생하려면 열대 해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보통 27℃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공기의 소용돌이가 있어야 하므로 적도 부근에서는 발생하지 않고, 남·북위 5° 이상에서 발생한다. 계절별로는 7~10월 사이에 많이 발생한다. 태풍의 수명은 발생부터 소멸까지 1주일에서 1개월 정도이다. 태풍이 접근하면 폭풍과 호우로 수목이 꺾이고, 건물이 무너지고, 통신 두절과 정전이 발생하며, 하천이 범람하는 등 막대한 피해가 일어난다.

그러나 태풍이 늘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태풍은 중요한 수자원의 공급원으로서 물 부족 현상을 해소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저위도 지방에 축적된 대기 중의 에너지를 고위도 지방으로 운반하여 지구상의 남북의 온도 균형을 유지시켜 주고, 해수를 뒤섞어 순환시킴으로써 바다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생각하기 싫은 태풍들]

① 사라[1959. 9. 17.]

1959년 9월 15일 서태평양 사이판 섬 해역에서 발생해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17일 한반도 남부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 사라는 중심 풍속 최대 초속 85m, 평균 초속은 45m, 최저 기압은 952hPa을 기록했다. 1904년 한반도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규모가 크고 강력한 태풍이었다. 우리나라 남해안에 상륙해 창원·마산·고성·통영 등 해안 지역을 거쳐 함안·진주 등 내륙을 통과했다. 또 부산과 울산, 경북 지역도 영향권에 들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18일 정오께 동해안으로 빠져나간 뒤 소멸되었다. 공교롭게도 추석 당일 새벽에 상륙하여 엄청난 폭풍우를 동반하여 삶의 기반을 빼앗아갔다. 통영·고성·마산 지역은 강력한 해일이 일어 가옥과 어장이 모두 쓸려나가는 등 피해가 극심했다. 사망 781명, 실종 206명, 부상 3,001명, 이재민 37만 3459명이 발생하였고, 건물 피해 6천 동, 피해 경작지 15만ha, 도로 유실 3,800개소, 선박 파손 1만 1704척 등 총 1,900억 원[1992년 화폐가치 기준]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셀마[1987. 7. 16.]

1987년 7월 15일 오후 11시 경 중심 기압이 약 975hPa의 B급 태풍으로 중심 부근에서는 최대 풍속이 30㎧로 다소 약화되면서 순천만으로 상륙한 후 추풍령 부근을 통과하여 계속 북동진하여 7월 16일 오전 5시 20분경에는 강릉 부근을 경유하여 동해 북부 해상으로 진출, 온대성 저기압으로 변질되었다. 태풍 셀마로 인한 피해는 매우 컸는데 그것은 태풍의 내습 시간이 야간이었고 강우 강도가 높은 집중호우를 동반했으며, 태풍의 중심원이 마산 지역을 스치면서 만조 시간과 일치하여 강한 해일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또한 서부 경남의 집중 호우로 남강댐에 방수 능력 이상의 많은 홍수량이 유입되어 상류 지역에 침수 피해를 초래하였다. 강한 바람과 비로 도내에서 119명이 사망했고 430여 채의 가옥이 침수되거나 파손돼 1,9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수만 ha의 농경지가 침수됐고 도로·전선 등 기반 시설이 파손되는 등 모두 2,399억 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1959년 발생한 태풍 ‘사라’ 이후 피해액 등이 최악의 수준이라고 회고했다.

글래디스[1991. 8. 22.]

8월 16일 북태평양 쓰시마 남동쪽 약 500㎞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다소 약한 태풍으로, 시속 10~15㎞의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다. 특히 일본 큐슈 서쪽 해상까지 북상한 태풍은 북동쪽으로 진행하는 정상 진로를 벗어나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꾼 매우 이례적인 진로를 택하였다. 태풍 글래디스는 많은 비를 동반하였으며, 호남 남서 내륙 지방을 통과하면서 오른쪽에 위치한 부산·경남·울산·경북 등에 기록적인 강우를 내렸다. 8월 22~26일에 발생한 인명 피해는 103명[사망 91명, 실종 12명]이었으며, 원인별로는 산사태 매몰 등 직접적인 원인이 84%, 감전사 등 간접 피해가 16%를 차지하였다.

[매미가 할퀴고 간 자리]

매미는 2003년 9월 12일 한반도에 상륙하여, 경상남북도를 중심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2003년에 발생한 모든 태풍을 통틀어 가장 강했고, 상륙 시의 세력은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중 최강급이었다. ‘매미’는 북한에서 제출한 이름이다.

역대 최강의 세력으로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매미에 의한 폭풍은 기록적인 것이었다. 가장 먼저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갔던 제주도에서는 태풍의 가항 반원에 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 순간 풍속 60㎧, 최대 풍속 51.1㎧가 관측되어 역대 기록을 경신하였다. 바람과 함께 동반된 비 역시 매우 강해 태풍 중심 부근의 강수대에 놓여 있었던 경상남도 남해, 전라남도 고흥 등지와 지형적인 영향을 받는 강원도 영동 지방에는 9월 12일~13일 사이 300~400㎜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였다. 태풍의 상륙 시간이 남해안의 만조 시각과 겹쳐 가공할 만한 해일이 발생, 마산에서는 지하 노래방에 갇힌 사람들이 그대로 익사하는 등 10여 명의 인명 피해를 내기도 하였다. 당시 추석 다음 날 명절맞이로 인구 이동이 많았을 때라 그 피해가 얼마나 심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마산의 고조 높이는 180㎝로 예측되고 있었으나 태풍에 의한 해일은 최대 439㎝에 달해 예측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설상가상으로 부두의 원목 수천 여 개가 바닷물과 함께 밀려 와 지하건물의 출구를 막으면서 피해를 더욱 키웠다.

부산은 해안 지역에 건설된 많은 건물이 침수되고, 남해안에 정박해 있던 선박의 파손과 침몰, 도심까지 밀려온 작은 선박들로 몸살을 앓았다. 태풍 매미로 인해 전국적으로 사망 71명, 실종 34명 등 큰 인명 피해와 4조 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냈다. 경남 52만 가구 등 전국 147만 가구의 전기 공급이 한때 끊겼으며, 발전소 다섯 곳의 가동이 중지됐다. 또 주택 1701동이 물에 잠기고, 2만 496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부산항 컨테이너 부두의 크레인 48기 가운데 1/4 가량도 파손돼 400억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냈다.

[태풍 매미의 복구 모습]

태풍 매미가 쓸고 지나간 자리는 전쟁이 지나간 폐허와 같았다. 물에 잠겼던 건물과 마을은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어딘가에서 떠밀려온 많은 집기들과 나무들은 흉물스럽게 뒹굴고 있었다.

지역의 대형 마트에서도 수재민들을 위해 구호품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고, 지역의 여러 회사에서는 김치·생수·라면 등 각종 구호품을 전달하였다. 각급 기관 단체와 군인·경찰·자원봉사자들이 이러한 복구의 현장에서 많은 땀을 흘렸다. 이들은 수재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하루라도 빨리 손에 안겨주기 위해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마을을 찾아 생활필수품과 먹을거리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수해 상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희망 나눔 장터를 개설하기도 하였고, 급수 봉사 활동도 이루어졌다.

물에 잠긴 지하 건물은 물을 빼기 위해 펌프로 작업을 하고, 물을 빼고 난 후에는 각종 사무용품과 가구 등을 들어냈다. 그 외 잠긴 곳은 물건들을 살리기 위해 씻고 닦고 말렸으며, 흉물스럽게 쌓여 있던 파손된 집기와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소독 작업과 바닥 청소를 했다. 부러지고 떠밀려온 나무들은 한쪽으로 정리하고, 길이 좁아 운반이 곤란한 곳의 태울 수 있는 쓰레기는 모아서 태웠다. 무너져버린 집의 자재들을 줍고, 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기름때가 잔뜩 묻은 쓰레기를 치우기도 하였다.

산사태로 유실된 지역은 중장비로 재정비하여 통로를 확보하여 작업을 하였고, 태풍으로 유실된 길을 다닐 수 있게 임시로 석축을 쌓기도 하였다. 강풍으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무너진 비닐하우스는 중장비와 인력이 투입되어 정리하였다.

이런 모두의 손길과 힘이 모여 매미로 인해 피해를 받은 지역이 차차 복구될 수 있었다.

[태풍의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들]

위치적으로 한반도 남쪽에 자리 잡은 창원 지역은 해마다 7~9월 사이 적도 해상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의 영향권에 포함되어 남해안의 다른 지역과 함께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다. 매미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입은 후 마창 환경 연합은 「태풍 ‘매미’ 관련 피해 조사 보고서」를 통해, 태풍 피해의 원인은 무모하고 과도한 국토 난개발이 부른 환경 재앙이며, 피해 원인이 구조화되어 있어 반복적인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낙동강 지역의 상습적 범람은 습지를 농지로 전용하여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줄어들었고, 하천을 직선화하여 본류의 유량이 급속하게 증가하여 홍수의 위험이 커졌다. 또한 제방과 같은 인공 구조물로 인해 홍수가 지류로 역류하는 등의 피해가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해일 피해를 입은 마산만의 경우 매립 때문에 좁아진 해역에서 해일이 순화되고 안정될 수 없었으며, 매립이 주거 지역과 해역 사이의 완충대 제거 역할을 하고, 항구와 매립지의 직선화된 구조물들이 해일의 파괴력을 높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역학 조사를 통해 앞으로의 태풍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이론적인 기초를 마련하고, 이와 더불어 다양한 시스템의 구축이 시도되었다. 상습 침수 지역을 설정하여 시에서 관리하고, 지하 주요 시설을 지상으로 이전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해일과 만조에 대비한 지하 주차장 및 건물 입구 등에 수침 방지 시설에 대한 설치 필요를 느꼈고, 해안 지대 전 가구가 들을 수 있는 재해 재난 방송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였으며, 소방 도로를 막는 가건물들의 철거를 통해 신속한 대응이 원활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앞으로의 태풍의 피해를 막고자 하는 노력이 시행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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