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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3416
한자 社洞里
이칭/별칭 사동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사동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0년 - 사동리 의창군으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사동리 마산시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2010년 7월 - 사동리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으로 편입
법정리 사동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가구수 244가구
인구[남,여] 727명[남자 370명, 여자 357명]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경상도 읍지』에 나오는 신기리(新基里)는 지금 사동리(社洞里)가 된 옛 마을로 추정된다. 신기리가 『경상도 읍지』에서 진해현 동면의 방리로 처음 나오며 『영남 읍지』에서 신기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경상도 읍지』와 『영남 읍지』의 방리 기록 순서를 대비하면 신기리사동리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동리사직단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진해현 지도』[1872]를 보면 사동리에 진해현 사직단이 표시되었다. 신기리사직단이 세워짐에 따라 신기리사동리로 바뀌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예전의 현감이 이곳에 있을 때 지금의 사동의 사직단을 쌓아서 매년 제를 지내 농사의 풍년과 국태 민안을 빌었으니 그 제단이 있었던 곳을 가리켜 진해현 때부터 사동이라 칭하였다. 사동은 본래 진해군의 사직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후에 사동리가 되었다. 황교는 사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뒤에 황산이 있고 앞에 다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자연 환경]

사동리는 넓은 들판으로 진곡천과 덕곡천이 흐르다 합류하여 진동만으로 흘러들어간다.

[현황]

사동리의 옛 마을로은 사동, 황교[항생기] 등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 사직단 터, 정효자문, 창의비, 창의탑 등이 있다. 사동교가 있다.

마산 사동리 성지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토성으로서 사동 마을의 낮은 산기슭을 따라 형성된 토성(土城)이다. 마을 동쪽의 구릉에서 시작하여 마을의 뒷부분을 감싸고 서쪽의 구릉으로 연결되어 있다. 토성의 평면은 주머니 형으로 입구는 좁고 둘러싸고 있는 내부는 넓은 모습이다. 성의 500m 앞쪽으로 바다가 있는다. 이는 바다를 통해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축조 연대는 조선 시대이다.

마산 팔의사 창의탑은 현충 시설로서 사동리 사동교 옆에 있는 팔각형 모양의 탑으로 3·1운동 당시 삼진의거(三鎭義擧)에서 숨진 8명의 의사를 기리기 위해 1963년 10월에 건립되었다. 삼진의거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 진동면(鎭東面) 3개면이 연합하여 일으킨 만세 운동으로 현재 탑이 있는 자리는 8명의 의사가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숨진 곳이다. 이들은 김수동(金水東)·변갑섭(卞甲燮)·변상복(卞相福)·김영환(金永煥)·고묘주(高昴柱)·이기봉(李基鳳)·김호현(金浩鉉)·홍두익(洪斗益)으로 8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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