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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17
한자 -船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기식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군 사관 학교 앞바다에 띄워놓은, 조선 시대 사용된 전투함의 모형.

[개설]

최근까지 전해오는 문헌 중에서 ‘거북선’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은 『조선 왕조 실록』이다. 이 기록에는 1413년(태종 13) 5월 초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이 왜선으로 꾸민 배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고, 1415년에는 “거북선이 매우 견고하여 적선이 해치지를 못한다”고 되어 있다. 그 후 180여년 간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난중일기』[이순신 장군] 1592년 2월 8일에 “거북선에 사용할 돛 베(帆 布) 29필을 받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난중일기』에 따르면 거북선에 비치한 포(砲)를 처음 발사한 날은 1592년 3월 27일이며,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장계(狀啓)에서 5월 29일 사천 해전(泗川海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형태]

해군 사관 학교에 전시되어 있는 거북선은 1980년 1월 31일 한국 해군이 학계의 고증을 거쳐 복원, 건조하였다.

거북선의 구조에 대하여 『이충무공 전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속명(俗名)을 본판(本版)이라고 하는 저판(底版)은 10매를 이어 붙였는데, 길이가 1,964㎝, 머리 쪽 너비 364㎝, 허리 쪽 너비 440㎝, 꼬리 쪽 너비 321㎝이다. 속명이 삼판(杉版)이라는 좌우 현판(舷版)은 각각 7매씩 이어 붙였는데, 높이는 227㎝, 맨 아래 제1판의 길이는 2,060㎝이며, 차례대로 길이를 더하여서 맨 위쪽의 제7판에 이르러서는 길이가 3,424㎝이고, 두께는 다같이 12㎝이다. 속명이 하판(荷版)인 노판(艫版)은 4매를 이어 붙였는데, 높이가 4자이고, 제2판 좌우에 현자포(玄字砲) 구멍을 하나씩 뚫었다.

[특징]

거북선은 해상에서 전투력을 고려하여 당시의 전선을 별도로 개장고안(改裝考案)한 것으로서 이순신의 장계에는 “앞에는 용머리를 만들어 붙이고, 그 아가리로 대포를 쏘며,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고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이라도 뚫고 들어가서 대포를 쏘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거북선은 노와 돛을 혼용하였다. 주로 먼 곳을 항해할 때는 돛을 사용하였으며, 돛대는 뉘었다 세웠다 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의 승조원은 130여 명이었고, 속력은 이순신의 장계에 기록된 항해 시간과 거리를 검토해 보면 약 6㎞/h 정도로 추정된다. 실제로 거북선은 적의 화시(火矢)나 총환(銃丸)으로는 뚫지 못하는 돌격선으로 16세기 어느 나라 전선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었다.

[참고문헌]
  • 해군 사관 학교 박물관(http://museum.navy.ac.kr/index.jsp)
  • 두산 백과사전 두피디아(http://www.doopedia.co.kr/doopedia/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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