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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동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55
한자 歸還同胞
이칭/별칭 재일 동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재우

[정의]

8·15 해방을 맞이하여 경상남도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 지역으로 귀환했던 한국 사람.

[개설]

해방을 전후하여 재일 한국인들이 마산으로 귀환했다. 해방 이전부터 귀환 이동이 시작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약 25,000여 명이 마산으로 귀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온 사람들로 마산 인근의 농촌 지역인 창원군, 함안군, 의령군 등의 출신들이었다. 귀국 직후엔 연고지로 갔다가 가난한 농촌 현실 때문에 도시 지역으로 나왔다.

[귀환 동포의 생활]

귀환 동포는 대부분 신포동월포동, 중앙동 등에 있었던 일본군 창고와 노동자들의 숙소, 그리고 회원동에 있었던 일본군 말 사육장의 마구간에서 살았다. 창고 안에 15~20가구가 칸막이도 없이 살기도 했다. 밑바닥엔 헌 가마니나 짚, 판자 조각 등을 깔았고, 비가 새는 지붕 밑에서 누더기가 된 이불이나 담요를 덮고 잤다. 조금 지나면서 판자를 주워서 칸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하모니카와 같다 하여 ‘회원동 하모니카촌’이라 부르기도 했다.

어른들은 막일로 품을 팔았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장사나 구두닦이, 넝마주이나 구걸을 했다. 선창에는 생선 내장을 주워 가려는 귀환 동포들이 많았으며, 심지어 소금 장수의 빈 가마니를 구입해 그 속에 붙어있는 소금을 털어 모아 내다 팔고 가마니는 방앗간에 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창고의 콘크리트 바닥 한 부분을 깨고 그 밑 부분의 흙을 넓게 파낸 다음 솥을 걸고 불어 때어 구들로 활용하며 생활했다. 큰 깡통을 주워서 모서리 부분을 잘라내고 편 것 여러 장으로 견고한 지붕을 만들고, 시멘트 부대나 비료 부대, 그리고 콜타르를 주어서 지붕을 만들어 창고 처마에 덧대어서 집을 늘리기도 했다.

학교에 간 아이들은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서 친구들에게 ‘우환 동포’로 불리며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수업료도 내지 못해 쫓겨나기도 했다. 한 귀환 동포는 “못살아 외국까지 가서 발버둥 치다가 해방이 되어 희망을 안고 왔는데 왜 우릴 푸대접합니까. 군대 가고 보국대 가고 할 일은 다했는데….”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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