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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노동 동우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06
한자 馬山勞動同友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3년 3월 14일연표보기 - 마산 노농 동우회 설립
성격 노농운동단체

[정의]

1923년 3월 14일 경상남도 창원 마산 지역에서 마산 신인회를 중심으로 설립된 노동 운동 단체.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3년 5월 1일 제37회 노동절을 맞아 마산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 오학선, 강덕보 등의 마산 노농 동우회 관계자와 이정찬, 김기호, 손문기 등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시가행진하였다. 여기에서 이들은 8시간 노동 쟁취와 노동자의 단결을 요구하였다. 같은 날 마산 추산 공원에서 매일신보 마산 지국이 주최한 백일장이 열렸는데 노동절 기념식에 참석했던 노동자들은 친일파의 척결을 외치며 백일장이 열리는 현장을 습격하였다.

마산 노농 동우회는 다른 지역의 노동 운동을 지원하는 활동도 하였다. 1923년 7월 서울의 경성 고무 공장을 비롯한 4개 고무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임금 인하 반대와 악덕 감독의 파면을 요구하며 아사동맹(餓死同盟)을 조직하여 동맹 파업하였는데 이들 파업 노동자들의 지원을 위해 마산 노농 동우회는 연설회를 개최하고 모금 활동을 펼쳐 마련한 의연금을 아사동맹에 보내 주었다. 마산 노농 동우회는 노동자의 환난 구제 사업의 목적으로 마산 지역의 삼성 병원 등 5개 병원에 협조를 요청하여 회원증을 지참한 노동자에게 무료 진료와 약값의 반만 받도록 하였다.

마산 노농 동우회는 노동자 파업과 분규의 중재 해결 역할도 하였다. 1924년 12월 마산 조면 공장(繰綿工場) 노동자 100여 명은 임금 인상과 위생 시설 설치, 식사 시간 및 월별 공휴일 확보 등을 요구하며 파업하였다. 마산 노농 동우회는 노동자 측으로부터 중재를 위임받아 사용자 측과 노사 협상을 벌임으로써 파업을 해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노동자 측은 공장주가 9개 요구 사항을 모두 수락하는 조건으로 파업을 풀었고, 마산 조면 공장 노동자들은 이후 조직적 활동을 위해 1925년 1월 직공단(織工團)을 건설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황]

부두의 자유노동자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창립 당시 여해(呂海)가 집행 위원장을 맡았다. 오학선, 강덕보 등이 마산 노농 동우회 활동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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