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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209
한자 昌原監理署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거리길 58[남성동 142-3]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윤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99년연표보기 - 마산포 개항과 함께 창원 감리서 설치
이전 시기/일시 1906년 10월연표보기 - 내부 훈령에 따라 창원 감리서 폐지하고 이사청으로 업무 이관
최초 설립지 창원 감리서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거리길 58[남성동 142-3]지도보기
성격 관청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협포구 남성동에 있었던 통상 외교 업무 담당 관청.

[개설]

감리서(監理署)는 조선 말기 개항장(開港場)과 개시장(開市場)에서 무역 및 외국인 거류지와 관련된 행정 업무를 담당하던 부서로서 수출·수입 상품에 대한 관세의 부과 및 징수를 담당하던 해관(海關)과 함께 개항장·개시장에 필수적인 관청이었다. 1883년 8월 부산·원산·인천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개항장·개시장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많아졌다. 창원에는 1899년 마산포의 개항과 함께 감리서가 설치되어 초대 창원 감리 안길수(安吉壽)가 감리서 주사(主事) 이원규(李元珪), 이섭(李涉), 이창진(李昌鎭) 등과 함께 업무를 시작하였다.

창원 부윤(府尹)이 겸임한 역대 창원 감리는 1899년 6월에 부임한 안길수(安吉壽), 1900년 6월에 부임한 한창수(韓昌洙), 1903년 7월에 부임한 이태정(李台珽), 1904년 11월에 부임한 현학표(玄學杓), 1905년 10월에 부임한 이재익(李載益), 1906년 5월에 부임한 이기(李沂) 등이었다. 감리 아래에는 주사·서기·통변(通辯)·청사(廳使)·순시(巡視)·사령(使令) 등의 직원이 있었는데, 직원의 숫자는 각 지역의 사정과 시기에 따라 달랐다. 감리서의 업무는 외부의 지휘·감독 아래 해당 지역 외국 영사와의 교섭, 외국인 거류지와 관련된 일체의 행정, 개항장에서의 상품 수출·수입과 관세 징수 상황 보고, 개항장에서의 상업·치안 질서 유지 등 매우 범위가 넓었다.

[변천]

1905년 을사조약을 강요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는 1906년 2월 중앙에 통감부, 각 지역에 이사청을 개설하여 한국 침탈의 주요 도구로 삼았다. 이에 따라 마산 주재 일본 영사관도 마산 주재 이사청으로 바뀌게 되었다. 1906년 10월의 내부(內部) 훈령(訓令)에 따르면 감리서를 폐지하고 대신 부윤을 두기로 했지만 감리서의 폐지와 함께 그 업무도 사실상 이사청으로 이관되었다. 즉 창원 감리의 보고에 따르면 이미 1906년 4월 창원 감리서의 외국인 및 외국인 거류지 소관 사무를 이사관에게 인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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