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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익태랑 피습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58
한자 境益太郞被襲事件
이칭/별칭 개항기,마산포,일본 영사관,경찰,저항,투숙,습격,반일 감정,모살죄,사형,항일 운동,민족 운동,봉기,부역 거부,조차지 매수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04년 2월연표보기 - 조선인들이 마산포 주재 일본영사관 소속 경찰을 습격
발생|시작 장소 창원군 내서면 근처의 조선인 민가
성격 일본인 경찰에 대한 조선인 습격사건
관련 인물/단체 境益太郞[마산포 주재 일본영사관 경찰, 일제강점기 초대 마산경찰서장]

[정의]

개항기인 1904년 2월에 마산포 주재 일본 영사관 소속 경찰을 조선인들이 습격한 사건.

[개설]

개항기에 일어난 일본 경찰에 대한 조선인 습격사건이며, 조선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1904년 2월 마산포 주재 일본영사관 소속 경찰 경익태랑(境益太郞)낙동강 하류로 수렵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창원군 내서면 근처의 조선인 민가에 투숙했는데, 10여 명의 조선인이 그를 습격하였던 것이다. 조선인들은 일본 경찰이 지닌 엽총, 탄환, 행장 등을 빼앗고 칼로 공격해 빈사상태에 빠트렸다. 이 사건은 당시 조선인들의 반일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조선인 9명이 체포되어 전원 강도 모살죄로 사형 판결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 이전에도 일제에 의한 정치·경제적 침략이 가속화되자 마산 지역에서도 일본의 침략에 대한 항일 민족 운동이 확대되고 있었다. 1899년의 토지 불매 운동 결성과 마산 사립 일어 학교 설립에 대한 반대와 폐쇄, 1901년의 일본인의 광산이권 침탈에 대한 항거, 1902년의 조선인 학대에 대한 집단적 봉기와 대일본인 투쟁, 1904년의 신상 회사(紳商 會社) 혁파를 위한 구마산 상인들의 투쟁과 일본군의 병참 수송 부역 거부 운동, 1909년의 일본 율구미 노국 조차지 매수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등이었다. 일본인 경찰에 대한 습격 사건도 이러한 항일 민족 운동의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결과]

조선인 9명이 체포되어 전원이 강도 모살죄로 사형 판결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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