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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72
한자 名賢簡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필사본
작가 김생 외 212인
소유자 한마학원
관리자 경남 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73호(名賢簡牘 子), 제509-74호(名賢簡牘 丑), 제509-75호(名賢簡牘 寅), 제509-76호(名賢簡牘 卯), 제509-77호(名賢簡牘 辰), 제509-78호(名賢簡牘 巳), 제509-79호(名賢簡牘 午), 제509-80호(名賢簡牘 未), 제509-81호(名賢簡牘 申), 제509-82호(名賢簡牘 酉), 제509-83호(名賢簡牘 戌), 제509-84호(名賢簡牘 亥)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경남 대학교(慶南 大學校) 박물관에 소장된 서첩(書帖).

[개설]

『명현간독』Ⅰ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 縣立 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 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명현간독』Ⅰ은 그 중 1종이다. 경남 대학교 박물관 데라우치 문고에는 ‘명현간독’이라는 이름의 서첩이 두 질(秩)이 있다. 한 질은 12첩으로 이루어졌고, 또 한접은 11첩으로 이루어졌는데, 편의상 『명현간독』Ⅰ『명현간독』Ⅱ로 구분하였다.

[형태 및 구성]

『명현간독』Ⅰ은 자(子)~해(亥)까지 모두 12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子)에는 신라 시대의 김생(金生)[711~?]부터 조선 전기의 일재(逸齋) 성임(成任)[1421~1484]까지 19인, 축(丑)에는 조선 전기의 방촌(庬村) 황희(黃喜)[1363~1452]부터 매계(梅溪) 조위(曺偉)[1454~1503]까지 17인, 인(寅)에는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부터 만취(晩翠) 김위(金偉)[?~?]까지 18인, 묘(卯)에는 만헌(晩軒) 정염(丁焰)[1524~1609]부터 취병(翠屛) 고응척(高應陟)[1531~1605]까지 17인, 진(辰)에는 사명당(四溟堂) 임유정(任惟政)[1544~1610]으로부터 곤육재(困六齋) 김의원(金義元)[1558~?]까지 18인, 사(巳)에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로부터 강석창(姜錫昌)[?~?]까지 17인, 오(午)에는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으로부터 이동직(李東稷)[1611~1675]까지 17인, 미(未)에는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9~1686]으로부터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1625~1689]에 이르기까지 17인, 신(申)에는 둔촌(屯村) 민유중(閔維重)[1630~1687]으로부터 이중조(李重祚)[1716~?]까지 18인, 유(酉)에는 염재(念齋) 정포(鄭宲)[1701~1776]로부터 학남(鶴南) 정우량(鄭羽良)[1692~1754]까지 17인, 술(戌)에는 번암(樊巖) 채재공(蔡齋恭)[1720~1799]부터 직하(稷下) 김상복(金相福)[1714~1782]까지 17인, 해(亥)에는 화포(花浦) 홍익한(洪翼漢)[1586~1637]으로부터 석파(石坡)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1820~1898]까지 17인, 모두 212인의 글씨 127편이 실려 있다. 크기는 36cm × 25cm이며, 제본이 고급스럽고 보관 상태도 양호하다.

[특징]

『명현간독』Ⅰ은 그 이름이 의미하는 만큼 주로 간독이 중심을 이루어 모두 127점이 수록되어 있다. 그 다음으로 시가 67편, 사경(寫經)이 4점, 기타 14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현간독』Ⅰ에 수록된 작품들은 신라 시대로부터 조선 말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단일 첩으로는 가장 방대한 규모에 속한다. 그렇다고 여기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모두 진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조선 전기 이전의 작품들은 그 진위를 좀 더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명현간독』Ⅰ은 데라우치가 재임 기간 동안 어떻게 자료를 수집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를 보여주고 있어 특히 흥미롭다. ‘자(子)’에는 이 첩을 데라우치가 구입하게 된 경위를 보여주는 작은 쪽지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 물건의 주인 측으로부터 80원에 겨우 승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인은 이문이 조금도 없습니다. 부디 굽어 헤아려 주시기 엎드려 바랍니다[本物主人許以八十元 今纔承諾然拙者無小利也 幸須俯諒伏望耳].” 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는 중간 매매업자가 원주인으로부터 『명현간독』Ⅰ을 80원에 구해서 데라우치에게 전달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으로, 곧 데라우치의 조선 관계 자료 수집에는 매매라는 수단도 포함되었음을 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또 ‘인(寅)’의 17번째 수록된 정존(靜存) 이담(李湛)[1510~1575]의 편지에서 배접으로 쓰인 종이를 보면 붉은 괘선을 그은 문서가 있는데, 이는 군통수 기관인 원수부(元帥府)의 조직표이다. 조선에 원수부가 설치된 것은 대한 제국(大韓帝國) 시기인 광무(光武) 연간이므로, 적어도 이 첩이 만들어 진 것은 광무 연간 이후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명현간독』Ⅰ의 전반부에 실린 글씨들 중 일부는 진위 여부를 가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있지만, 16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진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부의 진위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하나의 첩에 200여인이 넘는 작품이 실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서예사 흐름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개개 작품의 내용 중에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그 자체만으로도 이 첩이 가는 역사적 가치는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모두 12권(子~亥)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은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 509-73호(名賢簡牘 子)~제 509-84호(名賢簡牘 亥)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