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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501
한자 馬山星神大祭
이칭/별칭 성신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47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노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작 시기/일시 1760년연표보기 - 조창제의
중단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조창폐지
재개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어시장 객주에 의한 시장제로 부흥되어 시민의 축제가 되었으나 현재는 기제형식으로 3월 28일 제만 유지되고 있음
의례 장소 성신 사당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 지도보기
성격 마을신앙|민속축제|민속놀이|민속예술
의례 시기/일시 음력 3월 28일
신당/신체 성신사당|성신위목패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해상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민간신앙이면서 민속축제.

[개설]

마산 성신 대제는 창원시 성신 대제 보존회에서 보존 계승한 전통 축제이다. 현재의 성신대제는 수협중매인협회를 중심으로 1905년부터 현재까지 유지된 ‘성신위’ 위패와, 음력 3월 28일의 제의 전통을 근거로 구성된 것이다. 현재는 어시장축제와 시민을 위한 공연으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는 고려·조선 시대로 이어지는 조창이 있었다. 조창을 거점으로 발달된 마을은 개항을 맞아 더욱 번성하게 되어 도시가 급속도로 발달되었다. 도시의 발달과 조창지의 특성은 많은 연예오락을 발달시켰고, 조운선의 운항과 항해의 안전은 주민의 삶의 조건이 되었으므로 그에 따른 신앙을 발생시켰다.

1894년 조창의 폐지로 인해 전승기반을 상실한 성신대제는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4년 마산포에 대폭풍우의 재난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어시장 객주집단이 주체가 된 성신대제가 1905년부터 다시 시장제로 부흥되었다. 이 시기 어시장 신당이 설치되어 별신대세우기라는 민속의례가 행해졌다.

이후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성신 대제는 지역축제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수협중매인협회를 중심으로 기제만 유지되었다. 원래는 5년마다 중재, 10년마다 대제를 주기적으로 시행했다. 현재는 매년 기제형식만 유지하고 있다.

2006년 마산 문화원에서 지역문화 발굴사업의 일환으로 성신 대제 계승과 보존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성신 대제 보존회를 결성하여 계승하고 있다. 대제의 근거는 1928년 『중외일보』, 1954년 『마산일보』 기사와 1954년 마지막 대제관이었던 김준영의 구술자료[1984년 채록]를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경상남도 창원시 추산동의 환주산에 있는 신당은 산령각, 용왕샘[현재는 매워지고 없음], 엄나무 목신으로 구성되어 있는 산제당이다. 1933년 이곳에 성덕암 절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절의 경내에 속해 있다. 2003년 남성동 수산물도매센터 옥상의 현대식 사당을 신축했다. 현재는 산제당 제사는 없고 현재의 사당만 제당으로 유지되고 있다.

어시장 신당에서 제를 지낼 시기에는 자산동 뒷산에서 소나무를 베어 와서 별신대로 삼고 제를 지냈다. 현재는 사당에 ‘星神位’라고 새긴 위패가 신체다. 이것은 1905년 어시장 신당을 설치할 당시 밤나무로 만든 것이고 지금까지 이를 신체로 삼고 있다.

[절차]

창원시 성신 대제는 10년을 주기로 행해졌다. 대제를 위해 자산동 뒷산의 소나무를 한 그루 지정하여 ‘성신신목’이라고 흰 종이에 써서 붙이고 금줄을 쳐서 보호하여 기른다. 대제가 되면 깨끗한 흰옷을 입은 장정 8~10명이 신목을 베러 간다. 신목 앞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신목을 베어 어깨에 메고 목도소리를 부르며 내려온다. 이때 풍물패가 뒤따르며 반주를 해준다. 선창으로 옮겨와서 신대의 끝에 방울을 달고 돌로 신대를 고정시켜 세우고 사방에 황토를 뿌린다.

풍물패가 길군악을 연주하며 어시장 주변을 돌고 제당을 돌고 별신대가 세워진 곳에서 논다. 제주와 두 명의 집사가 제의 절차에 맞추어 제당에 음식을 진설하고, 축문을 읽고 제를 올린다. ‘성신고천문’을 읽고 신의 강림을 기원한 후 고천문을 축판 위에 올려놓는다. 헌작한 후 ‘축문’을 읽고 삼배한 후 물러난다. ‘성신고천문’과 ‘축문’을 사르고 음식을 조금씩 떼어 제주가 사당 주위에 뿌린다. 구경 온 시민들에게 ‘성신 큰 떡’을 나누어 음복하게 한다.

선창 앞에서 뱃고사를 지내고, 무당이 별신대 앞에서 별신굿을 한다.

[축문]

「성신고천문」

자미대제가 별을 다스리시고, 태을신이 십이궁 안에 계시네.

복두칠성님이 이곳에 임하시면 성주가 되고, 삼태성이 함께 비추면 어진 신하되네.

창원시민대표가 간절히 청하건대, 성스러운 자미대제와 이가 다스리는 별이 하늘로부터 지상에 강림하소서.

1980년에 사용된 축문의 내용

歲次○○年三月○○朔二十八日○○

마산주민대표 ○○○

감히 살피고 고합니다.

성신대장지신 왈

일월이 지나가니 / 때를 감응하야 뵈옵고 참례하나이다.

조성하야 다시 임하니 / 두렵지 않습니다.

경위를 지나 / 오직 우리 항구에

하토를 밝혀 임하시니 / 만인의 입에 머무릅니다.

배들은 어지러이 북적대고 / 그 신이 보우하시니

해산물이 넘쳐나고 / 이 멀리까지 복을 내려주시고

우리 민생의 수명이 / 바야흐로 내와 같이 이르게 하시고

물산(우리 지방 생산 물품)을 이익이 되게 이끌어 /

해와 같이 항상 변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공경으로 조두(목제기)를 진설하고 / 삼가 잔을 올리옵니다.

향기로운 향이 나니 / 감히 정성을 다하여 재계하옵니다.

적은 음식이지만 흠향하소서.

현재 제당에서 사용하는 축문

歲次○○年三月○○朔二十八日○○

창원주민대표 ○○○

성숙대장님께 감히 살피고 고합니다.

고대부터 바다의 뱃길을 평안히 열어주시니

우리 선조들의 삶이 풍요로워졌고,

오랫동안 우리 창원 시민들에게 복을 내리시니

만인의 입에 머무릅니다.

지금도 역사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나이다.

오늘 성신대제를

엄숙한 마음으로 열게 되었으니

창원 시민들과 축제를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명과 복을 내려주시고

바야흐로 내와 같이 이르게 하시어

해와 같이 항상 변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적은 음식이지만 흠향하소서.

[부대 행사]

별신굿의 송신굿이 끝나면 기다리던 풍물패가 풍물을 치고 논다. 이어 오광대 탈놀이와 씨름 등 창원 지역의 민속놀이를 한다. 씨름놀이에서 이긴 사람에게 상을 준다. ‘성신 큰떡’은 구경꾼들이 많으므로 떡을 나누어 음복을 하는 것이다. 1954년에는 구경꾼이 많아 음식을 다 나눌 수 없으므로 표를 나누어 주어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현황]

마산 수협 중매인 협회에서 해마다 명절에 기제사를 지내고 있다. 남성동 성신사당에 1905년 제작된 위패를 유지하고 있으며, 정월 초매식 때나 마산 어시장 축제 등을 시작할 때도 사당에 알린다. 마산문화원[원장 임영주]에서 성신대제보존회를 결성하여 연구와 공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