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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우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7046
한자 卞又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 10월 24일연표보기 - 변우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일 - 변우범 삼진 의거 참가
몰년 시기/일시 1974년 12월 23일연표보기 - 변우범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3년 - 변우범 대통령 표창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 - 변우범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변우범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변우범(卞又範)[1898~1974]은 1919년 4월 3일 창원 진동면(鎭東面),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삼진 의거를 주도하였다. 삼진의 만세 운동은 3월 28일의 진동면 고현 장날 만세운동을 주도한 후 잠시 피신했던 변상태, 권영대 등이 계획하였다. 변우범변상태황태익의 권유를 받아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약속하고 마을 서당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4월 3일 오전 9시,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모인 1,500여 명의 시위 군증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헌병 주재소가 있는 진동으로 향했다. 진동면진북면의 시위대와 합류하자 시위 군중은 5,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2시, 시위대가 진동면 사동리 다리에 이르자 급파된 헌병 주재소 직원과 일본인 재향 군인 30여 명이 시위대열을 막았다. 변우범은 시위대와 함께 용감히 응전하였다. 그러나 오후 3시 무렵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마산의 헌병 포병 대대의 야만적인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시위대는 해산되고 말았다. 변우범은 일제의 검속(檢束) 때 체포되어 1920년 10월 30일 경성 복심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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