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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청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0005
한자 馬山淸酒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음식물/음식물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박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최초 조리|제조 시기/일시 1904년 1월연표보기 - 일본인이 아즈마[東] 주조장을 세워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청주 주조를 처음 시작하였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 마산 청주 지역별 청주 생산 실적 1위 달성
성격 세시 음식|일상 음식
재료 멥쌀|찹쌀|기장|누룩
관련 의례/행사 정월 대보름 귀밝이술 먹기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생산·판매되었던 청주.

[연원 및 변천]

청주(淸酒)는 쌀과 누룩으로 빚은 우리나라의 전통주이다. 하지만 현재 약주라는 이름으로 일본식 청주를 청주라고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 강점기 때 산업화된 양조 기술이 유입되고 주세법이 제정되면서 일본인 주도로 주류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며 일본식 청주가 일반화되었다.

마산 청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식 청주, 속칭 정종(正宗)의 생산은 개항기인 1904년 1월 일본 거류민이 아즈마[東] 주조장을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마산의 청주 양조업은 해를 거듭할수록 확대되어 마산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성장해 ‘주도마산(酒都馬山)’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한 예로 1928년에는 마산의 12개 주조장에서 1만1천 석(石)의 청주를 생산하여 같은 해 1만 여 석을 생산한 부산 업계를 제치고 지역별 청주 생산 실적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38년에는 2만 석이 넘는 생산량을 보였는데 마산 청주는 국내 시장 뿐만 아니라 만주와 중국 대륙에까지 팔려 나갔다. 일제 강점기 마산에서 청주를 생산했던 주조장으로는 시미즈[淸水], 니시다[西田], 히라이[平井], 하라다[原田], 이시바시[石橋], 하마다[濱田], 지시마엔[千島園], 미요시[三好], 마쯔모도[松本], 야마무라[山邑], 쇼와[昭和] 등이 있었다.

일본의 침략 전쟁이 확대되면서부터 청주 생산 역시 위축되었고 이후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해마다 줄어들었다. 1961년에 마산에는 백광(白洸), 녹수(綠水), 조해(朝海), 삼광(三光), 삼강(三江), 대흥(大興), 삼일(三一) 등 7개 양조장이 남아 있었다. 1973년에는 중소 주류 업체들이 통합되면서 백광 청주만이 남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문을 닫음으로써 마산 청주의 명성도 1970년대를 넘기지 못했다.

최근까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3가에 옛 삼광 청주 공장 건물이 남아 있었다. 2011년에 공장 건물이 매각돼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시민들이 보존 운동에 나섰지만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만드는 법]

우리나라의 청주와 일본식 청주는 비슷해 보이지만 원료와 만드는 법에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전통 청주[약주]는 멥쌀, 찹쌀, 기장 등의 곡류와 누룩을 이용하여 빚는다. 누룩은 밀기울로 만든다. 누룩에는 당화 효소를 분비하는 곰팡이류와 알코올 발효를 할 수 있는 효모류가 함께 자라고 있어서 당화와 발효가 동시에 일어난다. 일본식 청주는 코오지라고 하는 국(麴)을 제조한다. 코오지는 찐 쌀에 곰팡이류를 인위적으로 배양한 것으로, 당화용 효소를 얻는다는 점이 누룩과 같은 원리이다. 단지 곰팡이균을 분리하여 배양한 것이 다르다.

청주 양조장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들어온 일본식 제조법인 3단 사입법을 보편적으로 쓰고 있다. 기본적인 제조 순서를 보면 쌀의 도정과 증자, 입국 제조, 밑술 제조, 담금, 조미 알코올 첨가, 압착, 앙금 분리, 살균, 저장 및 검주 등의 과정을 거쳐 출고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정월 대보름은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명절로서 오곡밥을 지어먹고 ‘귀밝이술[耳明酒]’로 식전에 데우지 않은 청주를 한 잔씩 마신다. 이 술을 마시게 되면 귓병이 생기지 않으며 귀가 더 밝아진다고 한다. 이 풍속은 한 해 동안 밝은 귀로 세상 이야기를 바로 들으라는 의미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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