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389 |
---|---|
한자 | 居昌 農林 補習 學校 設立 運動 |
영어공식명칭 | Geochang Agriculture and Forestry Continuation School Establishing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병욱 |
인가 시기/일시 | 1928년 7월 24일 - 거창 실업 보습 학교 창립 기성회 발족 |
---|---|
인가 시기/일시 | 1929년 8월 28일 - 거창 농림 보습 학교, 거창 공립 농업 보습 학교 인가 |
이전 시기/일시 | 1937년 5월 22일 - 거창 공립 농업 학교 설립 기성회 발족 |
개교 시기/일시 | 1944년 3월 31일 - 거창 공립 농업 학교 인가 |
최초 설립지 | 거창 실업 보습 학교 창립 기성회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149-18 |
주소 변경 이력 | 거창 공립 농업 학교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옛 변전소 터] |
성격 | 주민 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거창군에 거창 공립 농업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벌였던 주민 운동.
[개설]
1920년대 말까지 거창군에는 중등학교가 없어 보통학교 졸업생들의 진학률이 대단히 저조했고, 타 지역으로 유학을 해야 하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이에 지역민들은 1928년 거창 실업 보습 학교 창립 기성회를 조직하여 1929년 2년제 거창 공립 농업 보습 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곧 2년제 보습 학교의 한계를 느끼고 4년제 공립 농업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1937년 재차 기성회를 조직하여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1944년 중등학교 설립 운동 16년 만에 거창 공립 농업 학교가 개교하였다.
[역사적 배경]
1929년 당시 거창군은 총호수 18,000호에 초등 교육 기관인 보통학교가 여덟 개나 되었으나, 높은 향학열에 비해 보통학교 졸업생들의 중등학교 진학률은 대단히 저조했다. 이는 거창에 중등학교가 없어서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부산을 비롯한 타지로 유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거창 지역민들은 중등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 운동을 벌였는데, 애초에 5년제 정규 고등 보통학교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2년제 ‘실업 보습 학교’를 설립하고자 했다.
[경과]
1928년 3월 2일 거창 실업 보습 학교 기성 준비회가 조직된데 이어, 7월 24일에는 침류정에서 창립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기성회 위원장은 이현빈(李鉉彬)이었고, 위원은 유상범(俞相範), 신용희(愼鏞禧), 신○재(愼○縡), 주남재(朱南宰), 윤기상(尹基商) 외 23명이었다. 고문은 김성한(金星漢), 이현보(李鉉輔), 정태균(鄭泰均) 등이었다. 이들은 설립 기금을 23,000원으로 정하고 각 면별로 모금액을 분배하였으나, 미증유의 대가뭄으로 인해 모금 운동은 중지되었다.
1929년에는 실업 보습 학교 설립 운동이 더욱 구체화되어, 군에서 학교비 6천 원, 지방비 보조금 3,000원을 내고 거창 공립 보통학교 장학회 기금 3,000원을 더하여 총 12,000원의 자금이 준비되었다. 이에 8월 28일 경상남도로부터 ‘거창 공립 농업 보습 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이후 침류정을 임시 교사로 삼아 개교하였으며, 11월 공사비 6,990원으로 교사 신축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2년제 보습 학교로는 ‘완전한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지역민들은 재차 정규 농업 학교 설립 운동에 나서, 총독부와 도 당국에 수차례 승격을 진정하였다. 1937년 5월 22일에는 군내 유력자 90여 명이 모여 ‘거창 공립 농업 학교 설립 기성회’를 조직하고, 약 7만 원을 모금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운동에 나섰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위원장 김병우(金秉佑), 부위원장 김상길(金相吉), 테라오 세이타로[寺尾淸太郎]를 비롯하여 위원 73명이었다.
기부금 모집에 대한 지역민들의 호응도 폭발적이어서 거창 유지 전상길은 1만 원을 기부하였고, 거창읍 하동의 김경칠(金景七)은 3,000원을 기부하는 등 날품팔이 노동자들부터 국내외의 출향인들까지 기부금이 답지했다.
[결과]
1944년 3월 31일 조선 총독부로부터 거창 공립 농업 학교가 인가되었다. 1929년 거창 공립 농업 보습 학교[2년제]로 시작하여, 1937년 거창 공립 농업 실수 학교[1년제], 1941년 거창 공립 농업 전수 학교[2년제]로 각각 개칭하였다가, 마침내 4년제 정규 중등학교가 된 것이다. 1928년 거창 실업 보습 학교 창립 기성회가 조직된 이래 16년 만의 결실이었다. 당시 교사의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상살미, 속칭 ‘옛 변전소 자리’였다. 현재 아림 고등학교의 전신이며, 1951년 거창 중학교가 분리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창 공립 농업 학교 설립을 위한 지역민의 오랜 노력을 돌아봄으로써 일제 강점기 높은 향학열과 ‘교육 도시 거창’의 연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