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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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東輿地圖 |
영어공식명칭 | Daedongyeo-jido|Map of Daedongyeo |
이칭/별칭 | 거창 대동여지도,거창 박물관 대동여지도,대동여지전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성호 |
간행 시기/일시 | 1864년 - 대동여지도 목판 인쇄본으로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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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발굴 시기/일시 | 1982년 - 대동여지도 발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8년 5월 20일 - 대동여지도 거창 박물관에 기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0년 1월 16일 - 대동여지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5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대동여지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소장처 | 거창 박물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216-5 |
발견|발굴처 | 밀양 박씨 문중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
성격 | 고지도 |
저자 | 김정호 |
편자 | 김정호 |
간행자 | 김정호 |
권책 | 1권 21첩 |
규격 | 세로 670㎝[전체 세로]|380㎝[전체 가로]|30.6㎝[분첩 절첩 세로]|20㎝[분첩 절첩 가로]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 있는 거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지도.
[개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1804?~1866?]가 만든 우리나라 전도(全圖)이다. 보통 22첩으로 되어 있으며, 펼쳐 이으면 세로가 670㎝, 가로가 380㎝ 정도이다. 지도 제1책에 방안표를 실어 축척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십 리마다 점을 찍어 거리를 표기하는 형태로 거리를 계산하였는데, 대체로 전체 축척은 16만 분의 1로 추정되고 있다. 지도를 만든 목판은 60여 매로 추정되는데,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 11매, 숭실 대학교 박물관에 1매가 존재한다. 대동여지도 목판본 지도는 현재 25점 가량 남아 있다.
거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여지도는 1864년 재간본이다. 21첩으로 되어 있고 각 첩마다 원소장자로 추정되는 ‘이당진장(二堂珍藏)’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그러나 그 뜻이 소장자를 말하는 것인지, 소장처를 나타내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또한 거창 박물관 소장 대동여지도는 다른 대동여지도와 달리 가장자리 여백에 지리지적인 요소인 전국 군현의 이름과 한양까지의 거리, 고장의 별칭, 대표적인 산과 강 이름을 표기하였다. 이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칠백십 리(七百十里)[약 278.84㎞], 별칭은 거열(居烈)·거타(居陀)·아림(娥林)·제창(濟昌)이며, 대표적인 산은 우두산(牛頭山), 강은 가조천(加祚川)으로 표기되어 있다.
거창 박물관 소장 대동여지도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밀양 박씨 문중[고(故) 박선주]에서 소장하였는데, 1982년 고(故) 김태순 원장에 의해 알려졌다. 1988년 5월 20일 밀양 박씨 문중에서 거창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저자]
[편찬/간행 경위]
대동여지도는 1861년(철종 12)에 간행되었고 이후 수정 보완되어 1864년(고종 원년)에 재간되었다. 거창 박물관 소장 「대동여지도」는 재간본인 채색본 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자신이 1834년(순조 34)에 만든 「청구도(靑邱圖)」를 보완하여 만들었으며, 그 당시 군현의 지도 자료들을 모아 집대성한 지도로 알려져 있다.
[형태/서지]
거창 박물관 소장 대동여지도는 목판 판각본으로 분첩 절첩(分帖折疊)식이며, 22첩으로 되어 있는 다른 대동여지도와 달리 제21첩과 제22첩이 1권으로 제본되어 있다. 분첩은 전국 지도를 지역별로 21첩으로 나누것을 의미하며, 절첩은 휴대성을 위해 1개의 첩을 병풍처럼 접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첩으로 접었을 때 세로 30㎝, 가로 20㎝[남북 120리, 동서 80리] 이며, 21첩을 맞춰 이었을 때 세로 670㎝, 가로 380㎝의 크기가 된다.
[구성/내용]
거창 박물관 소장 대동여지도는 21첩의 완전한 형태로 되어 있는 대축척 분첩 절첩식 전국 지도이다. 목판 인쇄 후 가채(加彩)[색을 입힘]하였고, 여백에는 지리지 정보가 기재되어 있어 여타 대동여지도와 차별성이 크다.
별도의 표지가 붙어 있지 않으며 지도 인쇄면 뒷면에 ‘제일(第一)’, ‘제이(第二)’, ‘제삼(第三)’과 같은 식으로 첩수를 표기한 제첩(題帖)을 붙여 두었다. 모든 첩에는 ‘이당진장’이라는 소장인이 찍혀 있다.
제1첩에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라는 지도의 명칭과, ‘고산자 교간(古山子校刊)’이라는 간행자의 이름과, ‘당우 원년 갑자(當宁元年甲子)’라는 제작 연대가 명기되어 있어 정확한 연대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도성도(都城圖)나 방안표의 편집 형태나 군 경계선의 수정 보완 등으로 보았을 때, 거창 박물관 소장 대동여지도는 대동여지도 목판의 수정 내역이 모두 반영되어 있는 가장 후기에 제작된 지도로 보인다.
대동여지도는 백두 대간이라는 산줄기를 중심으로 제작되어 산이 많은 함경도 쪽이 크게 표현된 것 이외에는 근대 지도와 비교해도 유사하다. 또한 군현 경계 표시는 황색으로, 산줄기는 초록색으로, 강은 파란색으로, 도로는 붉은색 직선으로 채색을 하여 최대한 쉽게 지도를 알아볼 수 있도록 기호화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대동여지도의 오해와 진실]
일제 강점기 교과서인 『조선어 독본』에는 김정호가 전국을 일곱 번 돌고 백두산을 오르내리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는데, 흥선 대원군이 대동여지도가 너무 정확하다 하여 김정호를 옥에 가두고 목판은 모두 불태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를 분석한 결과 지역명의 오류 등이 이전 지도들과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등 직접 답사를 했다면 틀릴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로 보아 이전부터 만들어져 온 군현 지도 및 비변사나 규장각의 지도 자료들을 모아서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과 숭실 대학교 박물관에 목판이 일부 전해지는 것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어 독본』의 기록은 훌륭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조선의 지도자를 비판하고 식민사관을 키우기 위한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대동여지도 목판은 보물 제158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와 독도]
대동여지도에는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독도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에 일본은 대동여지도를 근거로 독도가 조선 땅이 아니라 일본 땅이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당시 최한기, 신헌 등 당대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되는 비변사, 규장각 등의 지도가 제작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군역(軍役)과 조세(租稅) 등 국가 경제 필요성이었다. 따라서 무인도인 독도를 그려 넣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가 모든 지리 정보를 목판에 판각하여 인쇄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필사본으로 제작 시 잘못 표기 될 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였고, 목판을 대량으로 찍어 보급함으로써 백성들이 전국 지도를 쉽고 폭넓게 이용하는 기회를 주었다. 또한 기호 표시로 전국의 군현 위치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하였고, 그 지역의 대표적인 산이나 강·특산물·서울과의 거리 등 지리지적인 요소를 적어 넣음으로써 원하는 지역에 대해 정확하고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