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17
한자 伊溪集
영어공식명칭 Igyejip
이칭/별칭 이계 유고(伊溪 遺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경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867년연표보기~1920년연표보기 - 『이계집』 이기두가 저술
간행 시기/일시 1971년연표보기 - 『이계집』 이당만이 간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5년 - 『이계집』 영인본 간행
소장처 경상 대학교 도서관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
소장처 부산 대학교 도서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40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60-1
성격 문집
저자 이기두(李基斗)
간행자 이당만(李唐萬)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반곽(半郭) 20.3×15.6㎝|광곽(匡郭) 28.9×19.3㎝
어미 상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 內向 二葉 花紋 魚尾)
권수제 이계유고(伊溪遺稿)
판심제 이계유고(伊溪遺稿)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출신 유학자 이기두의 문집.

[저자]

이기두(李基斗)[1867.4.22.~1920.2.]의 자는 성중(星重), 호는 이계(伊溪),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할아버지는 이병련(李秉璉)이고, 아버지는 이원훈(李元勳),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낙영(金洛榮)의 딸이다. 친아버지는 이형훈(李亨勳)이고, 친어머니는 수원 백씨(水原白氏) 백낙귀(白樂貴)의 딸이다.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태어났다.

1888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산당(道山堂)으로 이거하였고, 1890년경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원천 마을로 옮겨 살았다. 1894년에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동학 농민 운동을 피해 원천 마을로 피난하였는데, 이때부터 이승희에게 수학하였다. 뒤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에게도 배웠다. 이진상(李震相)의 문집 간행에 참여하였다.

1909년 화적 떼를 피해 거창군 남하면 살목[箭項]으로 이주하였다. 박종권(朴鍾權)·정영호(鄭永鎬)·윤철수(尹哲洙) 등과 교유하며 강학하였다.

이기두는 과거 초시에 합격하고 가을에 과거에 응시할 때 생년을 왕세자 이척(李拓)[1874~1926]이 태어난 해로 쓰면 합격할 수 있다는 말에 과거를 단념하고, 거창군 월천면 양평리에서 학동을 가르쳤다.

부인은 경주 김씨(慶州金氏)와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익재(朴翼在)의 딸이다. 묘소는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신기 마을 뒷산 간좌(艮坐)에 있다. 저술로 2권 1책의 『이계집(伊溪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이기두가 사망한 뒤 1938년 이기두의 아들 이지현(李祉鉉)이 박종후(朴鍾厚)에게 행장을 받았다. 이기두의 네 아들이 선친의 유고를 보관해 오다가, 손자 이당만(李唐萬)의 주도로 1965년에 간행 사업을 시작하였다. 1966년에 이기인(李基仁)·송재성(宋在晟)·권용현(權龍鉉)에게 서문을 받았고, 1967년에 이기원(李基元)에게 묘갈명을, 이기봉(李基鳳)에게 발문을 받아 1969년에 문집의 형태를 완성하였고, 1971년에 간행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1995년에 경인 문화사에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이계집』은 2권 1책의 석판 영인본(石版影印本)으로 된 문집으로, 크기는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이 20.3×15.6㎝, 광곽(匡郭)[판의 사주를 둘러싼 검은 선]은 28.9×19.3㎝이다. 사주 쌍변(四周 雙邊)[지면의 네 둘레를 두 개의 선으로 돌림]이고, 어미는 상 내향 이엽화문 어미(上 內向 二葉花紋 魚尾)[위쪽의 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이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와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이계문집(伊溪遺稿)’이다. 각 면은 10행 20자로 되어 있다. 경상 대학교 도서관, 부산 대학교 도서관, 국립 중앙 도서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계집』은 이기인·송재성·권용현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 214제(題)가 실려 있다. 시에는 고견암(古見庵), 오도산(吾道山), 보해산(普海山) 등 거창 지역의 풍광에 대해 노래한 것이 많이 보인다. 특히 거창군 가조면의 고견암과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심소정이기두가 교유한 인물들과 자주 찾은 곳으로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소다. 「서화(鋤禾)」와 「대우(待雨)」 등은 농민에 대한 연민을 담은 시들이다. 유학자의 면모는 철리시(哲理詩)에서 볼 수 있다. 「문비음(門扉吟)」과 「문비(門扉)」는 마음[心]을 문에 비유한 내용이고, 「세한음(歲寒吟)」과 「세한(歲寒)」은 이기두가 처한 암담한 세태를 겨울에 비유하여 봄이 오기를 갈망하는 내용이다.

권2에는 28명에게 보낸 편지 43편, 기(記) 1편, 발(跋) 1편, 고유문 1편,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 연재 송 선생(上淵齋宋先生)」은 연재 송병선이기두에게 ‘독서 수지(讀書守志)’의 네 글자의 가르침을 내려 준 것에 감사하는 내용이다. 「상 심석 송 선생(上 心石 宋 先生)」은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에게 「진학해(進學解)」에 대해 수업하고 그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는 내용이다. 「상 면우 곽 선생(上俛宇郭先生)」은 강재(剛齋) 이승희(李承煕)가 고향으로 돌아간 뒤 귀의처를 잃어 곽종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내용이다. 이승희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상 강재 이 선생(上剛齋李先生)」은 심·성·정(心性情)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여변장사영효석(與卞丈士永孝錫)」은 거창 지역의 유학자 변효석(卞孝錫)기정진(奇正鎭)의 문집 『노사집(蘆沙集)』을 공격하는 글을 남원 향교에 보낸 것을 두고, 문집에 옳지 않은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공적으로 배척하기보다는 논변을 통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만류하는 내용이다. 「이계기(伊溪記)」는 1895년에 지은 것으로, 당호이자 자신의 호를 붙인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다.

부록은 박종후가 지은 행장, 이기원의 묘갈명과 이기봉·이당만이 지은 발문이다.

[의의와 평가]

『이계집』이기두의 학문과 사상 및 당대의 위상은 물론, 거창 지역 유학자들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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