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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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倉 戰鬪 |
영어공식명칭 | Sinchang Battle |
이칭/별칭 | 웅양창 전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592년 4월 23일 - 신창 전투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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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592년 4월 23일 - 신창 전투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경상도 거창현 신창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
종결 장소 | 경상도 거창현 신창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
성격 | 의병 전투 |
관련 인물/단체 | 정기룡|모리 요시나리|조경 |
[정의]
임진왜란 중인 1592년 4월 23일 정기룡이 이끄는 조선군이 경상도 거창현 신창에서 일본군을 물리친 전투.
[개설]
거창현(居昌縣) 신창(新倉)은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일대에 있던 조선 시대 거창현의 창고이며, 웅양창(熊陽倉)이라고도 불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초기인 1592년(선조 25) 4월 23일 정기룡(鄭起龍)이 이끄는 조선군이 거창현 신창으로 침입한 일본군을 물리쳤다. 신창 전투는 임진왜란 중 거창현에서 치러진 첫 번째 전투이다.
[역사적 배경]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진을 공격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4월 18일 구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가 이끌던 일본군 제3군이 김해(金海) 하구(河口)에 상륙하여 경상우도를 거쳐 북진하였다. 그런 가운데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의 일본군 제3군 서로군(西路軍)이 거창현 신창에 나타나게 된다.
한편, 김해에 상륙하여 초계(草溪)·합천(陜川)·거창 등지로 진격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우방어사(右防禦使) 조경(趙儆)이 경상도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경상도로 남하하던 조경의 부대에 정기룡이 찾아와 종군을 자원하였다. 정기룡은 조경에게 건의하여 날쌘 기병으로 적들을 기습하자고 건의하였다. 조경이 이를 받아들여 수십 기의 기병과 함께 정기룡이 남쪽으로 급파되었다.
[경과]
1592년 4월 23일 정기룡의 기병이 거창현 신창에 주둔하고 있던 모리의 선봉군 500명과 맞닥뜨리게 된다. 일본군을 본 조선군은 두려움에 떨어 감히 나가지 못했으나, 정기룡이 선봉이 되어 적군의 중군(中軍)으로 돌격하니 여러 병사들이 뒤따랐다. 갑작스런 공격에 일본군은 패퇴하게 된다.
[의의와 평가]
정기룡의 행적을 기록한 『매헌 실기(梅軒實記)』에 따르면 신창 전투는 임진왜란 발발 후 조선군이 거둔 첫 승첩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