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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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加北夢石戰鬪 |
영어공식명칭 | Gabuk Mongseok Comba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08년 3월 31일 - 가북몽석전투, 의병 70여 명이 일본 수비대와 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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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가북몽석전투 -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몽석리 |
종결 장소 | 가북몽석전투 -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수도사 |
성격 | 의병 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차운보 |
[정의]
1908년 3월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몽석리에서 덕유산 의병과 일본 수비대가 접전한 전투.
[개설]
1908년 3월 31일 거창군 가북면 몽석리에서 차운보가 이끄는 덕유산 의병 70여 명이 일본 수비대와 접전하였다.
[역사적 배경]
러일 전쟁과 을사늑약의 체결로 이어지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이 전국적으로 크게 일어났다. 거창 등의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서는 덕유산과 지리산 등 산악 지대를 배경으로 유격전 형태의 의병 운동이 전개되었다. 전국의 많은 의병들이 덕유산으로 이동해 덕유산 의병 부대를 조직, 1910년 한일 합병 때까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경과]
1908년 3월 31일 오후 5시 거창군 가북면 몽석리 근처에서 차운보가 거느린 의병 70여 명은 일본 수비대와 접전을 벌이다가 거창 수도사 근처로 퇴각하였다. 일본 수비대가 이들을 추격해 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수비대는 마을 주민을 의병으로 오인 사격하여 주민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결과]
가북면 몽석 전투를 비롯하여 덕유산 의병과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자 일본군은 1908년 4월 13일 합천에 있던 보병 제14연대 7중대 주력을 거창으로 옮기고 덕유산 주변의 의병을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의병장들이 체포되었고 의병 세력은 점점 약해져 갔다.
[의의와 평가]
1908년 3월의 가북면 몽석 전투는 덕유산 의병이 거창 지역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인 전투로서, 거창이 후기 의병 운동의 주요 무대였다는 점을 잘 보여 주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