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60 |
---|---|
한자 | 神院 國民學校 同盟 休校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광욱 |
발단 시기/일시 | 1942년 10월 9일 - 일본인 교사가 한국인 교장을 폭행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42년 10월 10일 - 신원 국민학교 동맹 휴교 단행 |
발생|시작 장소 | 신원 국민학교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과정리 199-4 |
성격 | 학생 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일본인 교사 타카하시 마사히데|이기영 교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일본인 교사의 민족 차별적인 행동에 반발해 거창 신원 국민학교 학생들이 동맹 휴교를 벌인 사건.
[개설]
신원 국민학교의 일본인 교사가 한국인 교장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5학년과 6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동맹 휴교를 벌였다.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서 항일 민족 운동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동맹 휴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0년대 학생들은 일제 식민지라는 특수한 환경 하에서 3·1 운동 후 일제의 식민지 교육 정책에 대항해서 또는 민족 운동의 일환으로 다방면의 학생 운동을 전개했다. 동맹 휴학은 학원 내의 사소한 문제로부터 발단이 되어 일제 식민지 노예 교육에 대한 규탄, 나아가 총독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발전하였고, 결국 민족 독립을 부르짖는 민족 운동의 성격으로 천착되어 한 학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한국인의 교육 문제, 전 민족의 문제로 나타났다.
[경과]
1942년 10월 9일에 신원 국민학교 일본인 교사 타카하시 마사히데가 한국인 교장 이기영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학생들은 다음날인 10월 10일에 5학년과 6학년을 중심으로 동맹 휴교를 벌였다.
[결과]
동맹 휴교에 앞장선 학생들은 이후 신원 순사 주재소에 연행되어 3일 동안 문초를 받았다. 그 가운데 주동자로 지목된 학생 5명은 거창 경찰서로 이송되어 11일 동안 미결수 감방에 구금되었다.
[의의와 평가]
학교 현장에서의 민족 차별은 조선인 학생들에게 민족에 대한 자각심을 갖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