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유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83
한자 居昌 劉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익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거창(居昌) - 경상남도 거창군
입향지 거창 유씨 거창 입향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남산리 금곡 마을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거창 유씨 거창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남산리 금곡 마을
세거|집성지 거창 유씨 거창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거창 유씨 거창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지산리 자하 마을 지도보기
성씨 시조 유전(劉筌)
입향 시조 유환(劉懽)

[정의]

유전을 시조로 하고 유환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세거 성씨

[개설]

거창 유씨(居昌劉氏)유전을 시조로 삼고, 본관을 거창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2000년 인구 조사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6,081가구, 19,419명이 거주하고 있다. 조선의 명의 유이태(劉爾泰)는 정유재란 때 안의 황석산성에서 순절한 의병장 유명개(劉名蓋)의 고손자로 거창군 위천면 사마리에서 태어났다.

[연원]

거창 유씨의 시조 유전(劉筌)은 송나라 사람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와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내다가 1082년(문종 36) 고려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유전의 첫째 아들 유견규(劉堅規)가 거타군(居陀君)[거타는 거창의 옛 이름]에 봉해지고, 그의 손자 유웅열(劉雄悅)이 아림군(娥林君)[아림은 거창의 옛 이름]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거창으로 삼았다. 유견규의 자손들은 의사공파(義士公派), 정자공파(正子公派), 교수공파(敎授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 감정공파(監正公派), 참봉공파(參奉公派),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통정공파(通政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로 나뉘어 세거하고 있다.

[입향 경위]

거창 유씨는 고려 말 유전의 9세손 영계(瀯溪) 유환(劉懽)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로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위천면 남산리 금곡 마을로 낙향하면서 거창에 뿌리를 내렸다. 그 뒤 유웅열의 자손인 유한우(劉旱雨)가 거창읍 정장리에서 남하면 지산리 자하 마을로 들어와 살면서 자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현황]

1934에 조사된 조선 총독부 자료에는 남하면 지산리에 50가구, 위천면 남산리에 43가구가 거창 유씨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1970년대 남하면 지산리 자하 마을은 120가구의 큰 집성촌이었으나 급격한 이농 현상으로 1993년 현재 40여 가구로 줄어들었다. 2003년 거창군 통계에 따르면 거창 유씨는 274가구 692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거창에 살고 있는 거창 유씨 대동 종친회에서는 음력 3월 10일 시조와 거타군 유견규, 아림군 유웅렬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관련 유적]

거창 지역 거창 유씨와 관련된 유적은 고려 충신 유환이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켜 위천면 장기리에 은거하면서 지은 영사정(永思亭)이 있고, 거창읍 정장리에는 유형귀(劉亨貴)를 기리는 승유재(承裕齋), 남하면 지산리에는 벼슬이 자헌대부 예조 판서에 오른 충희공 우사 유 선생 신도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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