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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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谷集 |
영어공식명칭 | Iimgokjip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희 |
제작 시기/일시 | 1834년 - 『임곡집』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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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60-1 |
성격 | 전적 |
작가 | 임진부(林眞怤)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서 살다간 조선 후기 유학자 임진부의 문집.
[개설]
임진부(林眞怤)[1586.9.12~1658.9.5]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낙옹(樂翁), 호는 구곡 노부(九曲老夫)·임곡(林谷)이다. 아버지는 승근(承謹)이며, 어머니는 풍천 노씨(盧氏)로 입재(立齋) 노흠(盧欽)[1527~1602]의 후손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대평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1612년 진사가 되었으나 정치가 어지러움을 보고는 다시 과거를 보지 않고 은거하여 지냈다. 인조반정 후 독서인으로 이름이 있어, 1635년 대군(大君)의 사부로 천거된 적이 있다. 만년에는 합천의 구곡 밑에 살면서 방에 ‘자지헌(自知軒)’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연을 벗삼으며 지냈다. 저술로 8권 4책의 『임곡집(林谷集)』이 있다.
[형태 및 구성]
본집은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원집(原集)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유심춘(柳尋春)[1762~1834]이 1829년에 지은 서(序)와 세계도, 연보와 둘째 아들 임여백(林汝栢)이 쓴 연보 발(跋), 목록(目錄)이 있다. 1권에서 3권까지는 시(詩)로 증시와 차운시가 많은 편이며, 4권에서 8권까지는 문(文)이다.
1권은 오언시로 고시 25수, 절구 28수, 율시 37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절구의 「쌍계 창수(雙溪唱酬)」는 이흘(李屹), 성여신(成汝信) 등 16인과 최치원의 자취가 어린 쌍계사에서 지리산의 경광을 아울러 읊은 것이고, 율시의 「기정 동계옹(寄呈桐溪翁)」은 귀양 간 정온을 그리며 입춘에 지은 것이다.
2권은 칠언시로 고시 9수, 절구 160수가 수록되어 있다. 고시의 「봉정 이노파 선생(奉呈李蘆坡先生)」 등 3수는 이흘과 관련된 것이며, 절구에는 후진 양성의 의지를 보이는 「제자지헌(題自知軒)」, 1633년에 정온과 함께 조동(釣洞)에 가면서 읊은 시, 1640년 겨울에 박인을 곡하면서 지은 시 등이 있다.
3권은 칠언율시 97수가 수록되어 있다. 평생 추모한 퇴계 이황의 시에 차운한 4편과 1627년에 신익량을 만나 지은 시 등이 있으며, 정온, 이흘 등을 애도한 만시 24제가 있다.
4권은 서(書) 31편이 수록되어 있다. 정온, 이원익 등 26인과 주고받은 것으로 인물별로 순서에 따라 편집되어 있다. 정온에게는 1621년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 보낸 것과 1638년에 조부 임운의 묘갈명을 부탁하는 것 등이 있으며, 1615년 토산에 유배된 오장(吳長)과의 왕복 서한, 박인이 1636년에 『산해 사우 연원록(山海師友淵源錄)』을 작성할 때 임진부와 상의하며 수정하는 내용의 왕복 서한 등이 있다.
5권은 서(序) 3편, 기(記) 2편, 발(跋) 12편, 설(說) 2편이 수록되어 있다. 1628년에 추원계(追遠稧)를 맺은 연유를 기술한 「사가 추원안서(四家追遠案序)」, 1632년에 임곡재를 중수하면서 지은 「임곡 폐려 중수기(林谷廢廬重修記)」, 외조부의 시문을 수습하여 1권으로 엮은 과정과 감회를 쓴 「입재집 후지(立齋集後識)」, 1637년 장남의 발병으로 인해 향천에 살게 된 전말과 담박한 삶의 즐거움을 담은 「향천 우거설(香川寓居說)」 등이 있다.
6권은 잡저(雜著) 3편, 제문(祭文) 18편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의 「서상록(西上錄)」은 1635년 12월 대군사부에 제수되자 정온을 따라 상경하여 이듬해 1월에 사직하고 귀향한 여정을 간략하게 기술한 것이다. 제문은 임승근, 이흘, 정온 등을 추도한 것이다.
7권은 갈명(碣銘) 7편, 행장(行狀) 3편, 전(傳) 1편, 행장 1편이 수록되어 있다. 갈명은 1651년에 지은 누이 내외의 합묘갈명(合墓碣銘)과 허돈 등에 대한 것이며, 행장은 박인 등의 것이다. 영천(靈川)에 피란 중 가르침을 받았던 조경덕(曺敬德)의 전과 외조부의 행장이 있다.
8권은 예략(禮略)과 후집(後集)이다. 부록인 후집에는 조정립(曺挺立) 등이 지은 만장 20편, 용암 서원(龍巖書院) 유생 등이 지은 제문 15편, 1663년에 송정렴이 지은 행장, 1664년에 허목이 지은 갈명, 고암 서원(古巖書院)과 관련된 상량문 3편 등이 있다. 권미에는 1834년에 7대손 임호원(林灝源)이 쓴 지(識)가 있다.
[특징]
임진부 사후 이듬해인 1658년에 둘째 아들 임여백이 연보를 편찬하고, 문인과 자제들이 유문을 수습하여 소장하여 왔다. 그 후 6대손 임주석(林柱奭)이 임진부가 향사된 고암 서원을 1825년에 중수한 것과 더불어 문집 간행을 도모하였다. 가장 초고본을 바탕으로 1829년에 강고 유심춘의 교감을 거쳐서 원고본을 완성하였으나 임주석의 사망으로 간행이 미루어졌다. 1834년에 임호원이 노파 이흘의 후손 이화준(李華峻)과 8대손 임수계(林秀桂)와 함께 대전 서숙(大田書塾)에서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임곡집』은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출신 유학자 임진부의 학문과 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