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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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居昌黃山里慎氏古家 |
영어공식명칭 | Shin Clan's Old House in Hwangsan-ri |
이칭/별칭 | 원학 고가(猿鶴古家)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황산리 48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호열 |
건립 시기/일시 | 1927년 - 거창황산리신씨고가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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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4년 7월 4일 - 거창황산리신씨고가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거창황산리신씨고가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거창황산리신씨고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487 |
원소재지 | 거창황산리신씨고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487 |
성격 | 고택 |
소유자 | 신위범 |
관리자 | 신위범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 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근대 한옥.
[개설]
거창 신씨(居昌 愼氏) 집성촌인 대정리 황산 마을에 있으며 일명 ‘원학 고가(猿鶴古家)’라고도 한다. 대지 내에 안채·사랑채·중문채·곳간채·솟을대문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거창황산리신씨고가는 1927년에 옛 건물을 헐고 당시 유행하던 근대 한옥의 공간 구성과 건축 형태를 수용하여 건립하였다. 당시 지주 계층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건축주가 실용성과 기능을 중시하며 지은 근대 한옥이다. 건물의 배치와 공간 구성 등에서 건축주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 및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위치]
거창황산리신씨고가는 거창군청에서 서북 방향으로 10.6㎞ 떨어진 위천면 황산리의 황산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황산 마을은 거창 신씨 동족 마을로,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수승대에서 동북 방향으로 0.6㎞ 떨어져 있다. 집은 호음산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 부분에 해당하는 야트막한 구릉지에서 남향하고 있다.
[변천]
1501년(연산군 7)에 요수(樂水) 신권(愼權)[?~?]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은 거창 신씨의 동족 마을로 발전했다. 거창 신씨 고가는 1927년에 대지주 신도성이 지은 근대 한옥으로 마을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별칭은 원학 고가(猿鶴古家)이다. 집을 지을 당시 신도성은 천석군으로 알려진 대지주였으며, 건물의 배치 형식, 규모 및 세부 장식에 경제력과 사고 방식이 표현되어 있다. 근년에 행랑방 등을 욕실로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
거창황산리신씨고가는 좌측에 안채 영역, 우측에 사랑채 영역이 배치되어 있다. 안채 영역은 ㄱ자형의 안채의 정면에 곳간채, 우측에 중문채가 각각 자리 잡아 튼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ㄱ자형의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장여를 사용하여 수장한 홑처마 팔작집이며, 상부 가구는 오량가이다. 건물의 전후면과 측면에 다양한 툇칸이 발달하여 겹집형 평면을 형성하고 있다. 안채의 날개채에는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좌우에 계자 난간을 두른 누마루가 있다.
사랑채 영역은 남향하는 일(一)자형 사랑채를 중심으로 오른편에 대문채가 놓여 튼 ㄱ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5.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집이다. 평면은 정면 좌측부터 사랑 부엌, 큰사랑방, 사랑마루, 작은 사랑방이 차례로 연결된 형태이며, 각 실(室)의 앞과 뒤, 측면에 깊이가 다른 툇칸이 놓여 겹집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작은 사랑방 앞에는 한칸 폭의 낮은 누마루가 있으며, 이 마루와 작은 사랑방 주위에는 간략한 계자 난간을 둘러 장식했다. 사랑채도 안채와 같은 홑처마 팔작집이나 장식성을 표현하기 위해 처마 도리 받침 장여 밑에 소로를 사용하여 장식했으며, 상부 가구는 오량가이다. 사랑 마당 우측에 있는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집으로, 상부 가구는 삼량가이다. 평면은 가운데 솟을대문을 두고 좌우에 외측(外厠)과 욕실을 둔 형태이다.
[현황]
1994년 7월 4일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창황산리신씨고가는 1920년대 말 실용성과 기능을 중시하며 지었던 근대 한옥의 건축 형식과 공간 구성을 잘 보여 준다. 오랫동안 문물의 유입과 생활 양식의 변화를 겪으면서 전통 한옥에서 근대 한옥으로 변모를 추구하던 1920년대 말의 한옥이라는 데 큰 가치가 있다. 거창황산리신씨고가는 전통 한옥이 갖고 있던 격식의 해체 및 실용성의 중시, 부(富)의 편중 현상 등 복합적인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데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