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653 |
---|---|
한자 | 居昌反球軒 |
영어공식명칭 | Banguhe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동1길 17[강천리 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호열 |
건립 시기/일시 | 1870년대 - 거창 반구헌 건립 또는 중건 추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6년 3월 11일 - 거창 반구헌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거창 반구헌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거창 반구헌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1 |
원소재지 | 거창 반구헌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1 |
성격 | 고택 |
소유자 | 정준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반 사대부 가옥.
[개설]
조선 후기 헌종, 철종 시기에 영양 현감을 지낸 정기필(鄭夔弼)[1800~1860]이 살았던 고택이다. 조선의 충신으로 추앙받았던 동계 정온 이후 정희량 때 무신란을 일으키면서 초계 정씨 집안은 멸문지화의 위기에 처했다. 정기필은 인품과 덕행이 높은 무신(武臣)으로 초계 정씨 집안을 다시 일으킨 인물로 평가된다. 정기필이 살았던 거창 반구헌(居昌反球軒)은 현재 대문채와 사랑채 2동만 남아 있다.
[위치]
거창 반구헌은 거창읍에서 서북쪽으로 10.6㎞ 떨어진 위천면 강천리에 자리 잡고 있다. 위천면사무소에서 원학길을 따라 북으로 오다 원학길에서 갈라진 강천길을 따라 더 들어오면 강동교가 나오고, 여기서 우회전하여 조금만 들어오면 평지에 남향으로 지은 거창 반구헌이 보인다. 앞에는 위천이 흐르고 있고, 오른편에는 동계 정온 종택[중요 민속 문화재 제205호]이 자리 잡고 있다.
[변천]
거창 반구헌은 ‘숭정정축후이백삼십사년(崇禎丁丑後二百三十四年)’이라고 쓴 상량 묵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87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
‘반구헌’이라는 당호가 붙은 사랑채는 정면 4칸 반, 측면 1칸 규모의 전후툇집으로,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 형식이다. 전후에 툇칸을 둔 전후툇집인 사랑채는 정면 좌측부터 작은 누마루·두 칸 사랑방·마루방 형식의 사랑마루를 차례로 배열하고, 맨 우측에 반 칸 폭의 고방을 둔 형태이다. 후퇴의 공간에는 반침 등 수장 공간과 사랑 부엌 등이 있다. 건물 뒤 중앙에 부엌을 만들어 방 두 개를 한 곳에서 난방할 수 있게 한 것도 특징이다. 정면 우측에 작은 사랑방 대신 판벽을 두른 고방을 둔 것은 보기 드문 사례이다. 정면 좌측에 놓인 작은 누마루의 주위에 계자각 난간을 둘러 장식한 것은 사랑마루보다 작은 누마루를 중심으로 사랑 공간을 구성하겠다는 당초 의도에 따른 것이다. 구조는 민도리집으로 단순 소박하지만 사대부가의 품격이 풍기는 건축물이다. 사랑채는 장여를 사용하여 꾸민 수장집이며, 상부 가구는 대들보와 종보를 사용하여 종도리와 중도리를 받는 오량가이다. 사랑채의 맞은편에 배치된 대문채는 정면 5칸의 솟을대문으로, 어칸에 솟을대문을 두고, 그 좌우에 행랑방[3칸]과 광[1칸]을 두었다.
[현황]
정기필은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재산과 거처가 없어 당시 안의 현감의 도움으로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반구헌(反球軒)’이라는 당호(堂號)는 반구어제심(反求於諸心)에서 따온 것으로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의미이다. 거창 반구헌은 선조인 동계 정온 고택과 나란히 있다.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에 지은 거창 반구헌은 사랑채와 솟을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거창 지역 양반 사대부가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안채가 없는 것이 흠이지만 중심 건물인 사랑채 거창 반구헌은 19세기 말 거창 지역 사대부들의 겹집형 생활 공간과 가옥의 품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