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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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啓鎭 府使 善政碑 |
영어공식명칭 | Stone Monument for Remembrance of the Governor of Gim gyejin |
이칭/별칭 | 선정비,한글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원촌3길 25-2[노현리 18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용 |
건립 시기/일시 | 1877년 - 김계진 부사 선정비 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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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2009년 - 김계진 부사 선정비, 거창 포충사 앞으로 이건 |
현 소재지 | 김계진 부사 선정비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187 |
성격 | 비|선정비 |
관련 인물 | 김계진(金啓鎭) |
재질 | 석재 및 철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02㎝[높이]|28㎝[너비]|3㎝[두께] |
소유자 | 거창군 |
관리자 | 포충사 연안 이씨 문중 |
[정의]
조선 후기 김계진 거창 부사의 영세불망비로 한글이 새겨진 철비.
[개설]
김계진 부사 선정비는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소재 포충사(褒忠祠) 자전루(紫電樓) 앞에 있으며, 원래 면사무소 뒷길에 반 이상 매몰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도로 공사 과정에서 이건한 것이다. 1877년(고종 14) 거창에 부임한 김계진 부사에 대한 공적을 기록하기 위해 1879년(고종 16)에 건립되었다. 철비(鐵碑) 형태이며 비바람을 가리기 위해 네 개의 돌기둥 위에 지붕을 올려 비각을 만들었다. 높이 102㎝, 너비 28㎝, 두께3㎝이다. 글씨 크기는 앞면 5.5/3.5㎝cm, 뒷면 한글 6㎝이다. 뒷면에 한글이 거꾸로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건립 경위]
1877년 거창 부사로 부임한 김계진 부사에 대한 공적을 기록하기 위해 1879년에 세웠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원촌3길 25-2[노현리 187]에 위치하고 있다. 웅양면사무소 뒤 포충사[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7호] 앞에 세워져 있다.
[인물]
김계진(金啓鎭)[1823~188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옥(稚沃)이다. 이조 판서 상용(尙容)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익(炳翼)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정균(鼎均)이다. 음관으로 나가 1866년(고종 3) 청산 현감(靑山縣監)에 임명되었다. 1877년(고종14)에 거창 부사로 부임하여 관아를 중수하였고, 1881년 2월에 무장(茂長)으로 전임되었다.
[형태]
1879년에 건립된 것으로 비좌관석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비(碑)가 비바람에 부식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네 개의 돌기둥 위에 팔작지붕을 올려 비각의 형태를 만들었다. 비의 마멸은 하부가 심해 판독이 불가능한 곳이 있다. 비신의 앞면 글씨를 음각으로 주조하였고, 뒷면에 건립 연대를 양각으로 주조하였으면, 한글이 거꾸로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한글이 새겨진 철비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석비에 한글이 새겨진 것은 이윤탁(李允濯) 묘갈과 이영(李瑛) 묘계비(墓界碑), 산불됴심비가 있다. 관석의 앞면은 세 개의 수지문(樹枝紋)를 음각으로 표현하였고, 뒷면은 문양이 없는 평면이다.
[금석문]
앞 뒤면에 새겨져 있다. 뒷면에 한글이 새겨져 있다.
앞면(前面)
府使金侯啓鎭永世不忘碑(부사 김계진 영세불망비)
下車三載[부임 후 3년 동안]
著績廉公[청렴하고 공정한 공적을 드러내고]
古祠改觀[옛 사당이 새롭게 고쳐지니]
後學啓蒙[후학들이 계몽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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應□□□
一□□□
永□□□
뒷면(後面)
긔뫼동지달일립 기묘(1879년, 고종 16) 11월 일에 세우다.
[현황]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사무소 뒷길에 파묻혀 있다가 2009년 도로 공사 때 발견되어 포충사 앞으로 옮겨 연안 이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한글이 새겨진 유일한 철비로 희귀성을 갖춘 귀중한 금석문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