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783
한자 居昌 松溪寺 浮屠
영어공식명칭 Stupa of Geochang Songgyesa Temple
이칭/별칭 내원암 부도,송계사 승탑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송계사길 321[소정리 산2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훼손 시기/일시 임진왜란 시기 - 영취사를 비롯하여 5개 암자 소실
건립 시기/일시 1718년연표보기 - 거창 송계사 부도 건립
복원 시기/일시 1969년 - 송계사 중창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5년 - 거창 송계사 부도 거창 박물관과 거창 문화원에서 발굴 조사 및 복원 실시
이전 시기/일시 2010년 - 거창 송계사 부도 송계사 입구에서 송계사 경내로 이건
현 소재지 거창 송계사 부도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산 27 지도보기
원소재지 거창 송계사 부도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산34 지도보기
성격 유적|부도
양식 석종형 부도
재질 화강석
크기(높이) 150㎝[높이]|2m[둘레]
소유자 대한불교 조계종
관리자 송계사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송계사에 있는 조선 시대 석종형 부도.

[개설]

거창 송계사 부도(居昌松溪寺浮屠)송계사와 관련된 승려의 부도로 짐작된다. 원래 내원암(內院庵) 터에 있었던 부도로서 내원암지(內院庵址) 부도라고도 한다. 거창 송계사 부도가 있는 송계사(松溪寺)[전통 사찰 제57호]는 신라 652년(진덕 여왕 6)에 창건된 사찰이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원효의상이 652년 영취사(靈鷲寺)를 창건한 뒤 5개의 부속 암자를 세우면서 송계암이라고 이름 지어 창건했다. 그 뒤 많은 고승(高僧)들이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 임진왜란 때 영취사를 비롯하여 5개의 암자가 모두 불탄 뒤 폐허로 있다가 숙종 때 진명(眞溟)이 송계암만을 중건했다. 6·25 전쟁 때 다시 전소된 것을 1969년 중창했다. 현재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대웅전·문각[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유물로는 아미타여래 좌상·소종(小鐘)·탱화 3점 등이 있다.

[건립 경위]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으로 송계사와 관련된 스님의 부도로 짐작되나 정확히 알 수 없다. 부도 몸체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1718년(숙종 44)에 세워진 부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산27 송계사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위치는 송계사 아래 1㎞ 떨어진 남덕유산 관리 사무소 옆에 있었으나 2010년 도난 예방 차원에서 현재 위치로 옯겼다. 부도 중 1기는 하천가에 파 묻혀 있던 것을 1995년 거창 박물관거창 문화원에서 조사 후 복원하였다.

[형태]

전형적인 조선 시대 석종형 부도(石鐘形 浮屠)이며, 현재 2기가 남아 있다. 부도의 크기는 높이가 150㎝ 둘레는 2m이다. 부도 중 옥개석이 없는 승탑의 크기는 높이가 89㎝, 탑신 폭은 50.8㎝이며, 명문이 새겨진 부도 서근탑 크기는 높이가 148㎝, 탑신 폭은 63㎝이다.

[금석문]

부도 몸체에 “○○당 대사 서근탑(○○堂大師西根塔)”, 받침석에 “강희 오십칠년 삼월 일 건, 유좌 묘향(康熙五十七年三月日建, 酉坐卯向)” 명문이 새겨져 있다. 강희 57년은 1718년(숙종 44)에 해당된다.

[의의와 평가]

거창 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 부도로 보존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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