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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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居昌 見庵寺 - |
영어공식명칭 | Site of Geochang Gyeonamsa Temple |
이칭/별칭 | 고견암,고견사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월포1길 141-301[수월리 1161-8] 일대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성호 |
소재지 | 거창 견암사 터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1161-8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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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유적|절터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 있었던 조선 초기 고려 왕족을 위해 수륙재를 지냈던 견암사의 절터.
[개설]
견암사(見庵寺) 터는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숭유 억불 정책을 쓰던 조선 시대에 고려 왕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전답과 향을 내려 수륙재를 행하던 절이다. 경상도의 대표적인 절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견암사는 가조현(加祚縣) 우두산(牛頭山)에 위치하였고, 교종(敎宗)에 속하며, 급전(給田)이 150결이다. "우리 태조가 명하여 수륙사(水陸社)를 만들고, 매년 춘추(春秋)로 향(香)을 내려 재(齋)를 베푼다"(『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강원도의 수륙사인 상원사(上元寺)가 화재를 당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이 절의 수륙재(水陸齋)는 고려 왕씨(王氏)를 위한 것이다. 또 경상도에 현암(見庵)이 있었는데, 이 절도 이미 화재를 입었으니 혁파(革罷)하라.” 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경상도 견암사는 원속전이 50결인데, 이번에 100결을 더 주고, 거승은 70명이다."[세종 6년 갑진(1424)]라는 예조에서 올린 보고 기록이 존재한다.
[변천]
견암사가 없어지면서 견암사에서 고견사로 옯겨 간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지역 주민들은 견암사와 고견사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고견사 아래 폭포의 이름 또한 견암 폭포라 불리어지고 있다. 달순(達順) 스님에게서 중수기(重修記)를 부탁 받아 글을 지었다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기록이 전하고, 세종 조에는 불타 없어진 견암사와 더불어 수륙재를 그만 두라는 기록이 있으나 문인들의 견암사 유람기은 조선 후기까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위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거창부 여지 승람(居昌府輿地勝覽)」 등에 있는 ‘재 우두산 견암사(在牛頭山見巖寺)’란 기록으로 미루어 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행정 구역상으로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1161-8번지 일대이다. 주변에서 기왓장, 도자기 편 등이 다수 출토되고 있으며 현재는 가조 골프 연습장이 들어서 있다. 한편으로는 가조면 도리 대학동 일대라고도 전해지기도 한다.
[현황]
고견사와 견암사를 혼용하고 있지만 현재는 고견사 절이 남아 있고, 견암사 터로 추정되고 있는 곳에는 골프 연습장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1395년에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족을 위하여 시전(施田) 150결을 내리고 매년 2월과 10월에 수륙재를 올리던 절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고려 왕족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진관사(津寬寺)·상원사·견암사 등에서 수륙재를 지낸 기록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