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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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八顧 |
이칭/별칭 | 원천(原泉),경필(景弼)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광수 |
출생 시기/일시 | 1540년 - 전팔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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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12년 - 전팔고 사망 |
출생지 | 전팔고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
거주|이주지 | 전팔고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
사당|배향지 | 용천사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죽산(竹山) |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가계]
전팔고(全八顧)[1540~1612]의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경필(景弼), 호는 원천(原泉)이다. 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전맹언(全孟彦)이다. 아버지는 선무랑 용궁 훈도(宣武郞龍宮訓導) 전확(全擴)이고, 어머니는 여우문(呂遇文)의 딸 성산 여씨(星山呂氏)이다. 부인은 참봉(參奉) 최삼(崔滲)의 딸 양천 최씨(楊川崔氏)이다. 전팔고는 자식이 없어서 종형(仲兄) 전팔준(全八俊)의 둘째 아들 전여율(全汝慄)를 양자로 삼았다. 전팔급(全八及)과는 사촌이다.
[활동 사항]
전팔고는 1540년(중종 35)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에서 태어났다. 전팔고는 학문에 능통하여 11세 때 『논어(論語)』·『중용(中庸)』을 독파하였다. 20세 때는 덕계(德溪) 오건(吳健)의 문하생이 되었다가, 25세 때 덕산으로 가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이 되어 학문을 익혔다. 1587년에 원천정(原泉亭)을 건립하여 한강(寒岡) 정구(鄭逑),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옥계(玉溪) 노진(盧禛), 사호(思湖) 오장(吳長), 문위(文緯) 등과 강론하며 학문과 도의를 연마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전팔고는 원천정(原泉亭)을 의병의 비밀 모의 장소로 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합천에서 정인홍(鄭仁弘)이 의병을 일으키고 주변 경상 우도에서 의병 활동을 한 전팔고, 하혼, 권양, 문경호, 정인영, 정인함 등을 참좌(參佐) 각수 유사에 삼았다. 이로 보아 전팔고가 일으킨 의병은 어느 정도 규모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팔고는 부산 등지가 잇달아 함락되자 향교와 서원의 생도들을 모아 요서에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고, 이듬해에는 우현(牛峴)에서 초유사 김성일을 만났다. 또한 전팔고는 명나라 장수 유총병(劉摠兵)이 대구에서 거창으로 진을 옮겼으나 극심한 군량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군량을 공급하여 위기를 면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명나라 황제는 첨지(僉知) 벼슬을 내렸고, 선조(宣祖)는 대사헌(大司憲) 벼슬을 내렸지만 마다하였다. 1612년(광해군 4)에 7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현재 그의 호를 딴 원천 마을이 거창에 존재한다. 저서로는 『원천집(原泉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원천 마을에 있는 용천사(龍泉祠)에 형사보(刑士保)·유자방(柳子芳)·이계준(李繼俊)·전팔급·서숙(徐䎘)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