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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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辰汝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가연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4월 10일 - 강진여 장수읍 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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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4월 18일 - 강진여 일본 경찰에 체포 |
몰년 시기/일시 | 1908년 4월 18일 - 강진여 체포되어 호송 도중 피살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강진여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성격 | 의병장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문태수 의진의 부장(副將) |
[정의]
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개설]
강진여(姜辰汝)[?~1908]는 문태수(文泰洙) 의병장의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4월 10일 장수읍을 습격한 후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 마을에 나타나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1908년 4월 18일 신종삼의 밀고로 거창 경찰 분서에 체포되었다. 호송되는 도중 탈출을 시도하다 일본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활동 사항]
강진여는 문태수(文泰洙) 의진의 부장(副將)으로서 덕유산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이다. 강진여는 1907년 ‘정미 7조약(丁未七條約)’에 따른 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하던 시기에 문태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문태수 의병장과 함께 덕유산을 근거지로 하여 경상남도, 전라북도 일대에서 활발한 의병 활동을 진행하였다.
1908년 2월 무주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였고, 같은 해 4월 10일에는 문태수 의병장이 의병 150여 명을 이끌고 전라북도 장수읍을 습격할 때 함께 참여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주재소와 학교 및 군아(郡衙)를 불태웠다. 그러나 4월 18일 거창군 위천면 황산(黃山) 마을에서 군자금 3,100냥을 징수하던 중, 신종삼(愼宗參)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경상남도 거창의 일본군 수비대 본부로 끌려가던 중 탈출을 시도하다가 그 자리에서 피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강진여에게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