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01
한자 吳文鉉
영어공식명칭 Oh Mun Heon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심옥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4년연표보기 - 오문현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 오문현 사망
출생지 오문현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거주|이주지 오문현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활동지 오문현 활동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거창 3·1 만세 시위 참여

[정의]

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전국적인 3·1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여 1919년 3월 21일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거창 3·1 만세 운동을 논의, 3월 22일 거창읍 장날 거사를 결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와 5인의 책임 대표를 선출했는데, 오문현(吳文鉉)[1854~1926]은 5인 대표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계]

거창 3·1 운동을 주도한 오기현이 동생이다.

[활동 사항]

독립운동가 오문현은 1919년 3월 22일 거창 3·1 운동의 준비 과정에서 지역 유림과 함께 3월 22일 거창 장날에 봉기를 준비하는 데 참여했던 인물이다. 당시 만세 운동을 주도한 5인의 핵심 인물 중 1인으로, 거사 전날 사전 정보 유출로 핵심 인물들이 체포되자 22일 장날 아침 장기리 만학정 앞에 운집한 군중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 당시 66세의 노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생 오기현과 함께 거창으로 시위 행진을 펼치며 일본 경찰의 총칼에 맞섰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저지와 총격으로 희생자가 속출했고 군중 해산 명령이 내려졌다. 당시 거창에는 수백 명이 체포되어 고문과 태형을 당했다. 이에 오문현과 오기현 형제는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각기 피신했고, 오문현은 경북 성주에서 1926년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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