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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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滉 |
이칭/별칭 | 경호(景浩),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문순(文純)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채광수 |
[정의]
조선 전기 거창을 방문했던 학자.
[개설]
조선 전기 유학자 퇴계 이황은 거창을 방문해 여러 일화를 남겼다.
[가계]
이황(李滉)[1501~1570]의 본관은 진보(眞寶)이고,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이다.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정(李禎)이고 할아버지는 이계양(李繼陽)이다. 아버지는 이식(李埴), 어머니는 박치(朴緇)의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허찬(許瓚)의 딸 김해 허씨(金海許氏)이며, 두 번째 부인은 권질(權礩)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활동 사항]
이황은 1501년(연산군 7)에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1543년(중종 38) 1월에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에 살고 있던 장인 권질(權礩)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하여 거창을 방문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거창에 머물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이황은 거창 영승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돌아갔다. 우선 그는 영승 마을의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 이름인 ‘영송(迎送)’을 ‘영승(迎勝)’으로 고쳤는데, 그 이유는 송(送)이 아름답지 못하고 마을의 경관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수승대(搜勝臺)의 이름도 바꾸었다. 수승대는 원래 ‘수송(愁送)’이란 이름이었는데, 그 이름이 너무나 속되고 지세와 풍경에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개명한다고 하면서 수승대 개명시를 남겼다. 그 밖에도 이황은 거창에 머물러 있던 기간 동안 「사락정시」, 「건계정 계곡시」, 「소지현시」 등의 여러 글을 남겼다.
[학문과 저술]
이황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성학 십도』가 있다.
[묘소]
이황의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황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1575년(선조 8)에 이황을 배향하는 도산 서원(陶山書院)이 사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