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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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珩 妻 草溪 鄭氏 |
영어공식명칭 | jeonssi, jeongssi |
이칭/별칭 | 초계 정씨(草溪鄭氏)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거주|이주지 | 열녀 정씨 모녀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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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초계(草溪) |
[정의]
임진왜란 때 왜적의 핍박에 저항하다 순절한 절부 모녀.
[가계]
정씨(鄭氏), 전씨(全氏) 모녀는 정선 전씨(旌善全氏) 전형(全珩)의 아내와 딸이다. 거창의 정선 전씨는 조선 초에 정선에서 정선 전씨 전맹겸이 거창으로 이주한 후 지속적으로 거창의 영승 마을에서 거주하였다. 한편, 초계 정씨는 합천 초계의 옛 이름이 팔계(八溪)이므로 팔계 정씨라고도 한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동계 정온의 집안으로 볼 수 있다.
[활동 사항]
정씨, 전씨 모녀는 첨지를 지낸 전형의 아내 초계 정씨와 그의 딸이다. 이들은 1598년(선조 31) 왜적을 피해 산골로 피난하였다. 그러나 적에게 발각되어 사로잡혀 핍박을 당하게 되자 적을 꾸짖으며 따르지 않았다. 딸 전씨 역시 왜적이 끌고 가려고 하자 나무뿌리를 붙잡고 끝까지 저항하며 따르지 않았다. 왜적이 어머니 정씨를 칼로 내려치자 딸 전씨가 어머니를 끌어안고 손가락이 잘려도 놓지 않았다. 끝내 서로 안은 채 왜적의 칼에 죽고 말았다. 1600년에 나라에서 모녀의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는 거창군 마리면 월계리 월화 마을 앞 37호 국도 변에 있다. 정려에는 ‘열녀 첨지 전형 처 팔계 정씨지려(烈女僉知旌善全氏全珩妻八溪鄭氏之閭)’라 쓰여 있다.
[상훈과 추모]
열녀 정씨에게 나라에서 1600년에 정려를 내렸다.